초당역: 두 판 사이의 차이

내용 삭제됨 내용 추가됨
37번째 줄:
초당이라는 명칭은 한문으로 草堂이라 하는 바, 이 초당은 조선시대 제자에게 학문을 가르치기 위한 시설로서, 한때 고려말의 유명하신 야은 冶隱 길재 吉再선생께서 스승이신 포은 圃隱 정몽주 鄭夢周의 묘소(부근 능원리)에 3년동안 모시면서 이곳에서 제자를 가르친 일이 있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이러한 연고로 후일 이곳의 유명하신 靜庵 정암 조광조 趙光祖선생(심곡서원 深谷書院에 모신 유학자- 십리안에 묘소 있음)께서 후일 선생으로 추존하였다 합니다.
이러한 기록은 이조 초기에는 삼엄한 경비지역이지만 제자로서 두려움을 무릅쓰고 3년의 시묘 侍墓를 하였다는 것은 매우 용기 있는 일입니다. 이관희 李觀熙 씀
趙光祖之學之正。其所傳者有自來矣。自少慨然有求道之志。受業於金宏弼。宏弼學於金宗直。宗直之學。傳於其父司藝叔滋。叔滋之學。傳於高麗臣吉再。吉再之學。得於鄭夢周之門。夢周之學。實爲吾東方之祖。則其學之淵源類此。 此太學生請復趙光祖爵。今截取道學淵源一節。
 
本府古稱文獻之方。道德文章。代不乏人。而冶隱先生吉再。當麗季。不事二姓。樹萬古忠義之節。至誠事母。倡人子終養之孝。師事圃隱。傳東方理學之波。訓誨諸生。課讀童孩。多所開發。家僮門僕。亦習聞其說。以詩相杵。人比鄭公之鄕。豈特可祭於社而已哉。白雲安先生。臨皐鄭圃隱。皆已立院享祀。使諸生知所向方。而吾鄕獨闕。斯豈非名府一大欠事乎。玆欲幷力殫財。創立書院于冶隱先生終老之地金烏山麓。庶幾使先生有享。諸生有學。
{{인접정차역/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