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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66-68년 [[교황 클레멘스 4세]]는 비테르보를 [[호엔슈타우펜 왕가|호엔슈타우펜]]과의 전쟁 기지로 삼았다. 그래서 이곳에 있는 교황의 궁전에서 그는 [[카시아 가도]]를 통과하던 [[슈바벤]]의 [[콘라딘]] 군대를 파문시켰다. 비테르보에서 선출된 다른 황제들로는 [[교황 그레고리오스 10세]], [[교황 요한 21세]], [[교황 니콜라오 3세]], 프랑스 출신 [[교황 마르티노 4세]]가 있다. [[나폴리 왕국]]의 [[카를로 1세]]가 선출시킨 교황을 인정하지 못한 비테르보 시민들은 [[콘클라베]]가 열리던 성당을 습격하여 두 명의 추기경을 사로 잡았다. 비테르보는 계속해서 파문을 당하였고 교황은 결국 86년간 비테르보를 포기했다.
 
교황에게서 벗어난 비테르보는 디 비코 가문의 지배를 받았다. 14세기 [[조반니 디 비코]]는 [[치비타베키아]], [[타르퀴니아]], [[볼세나]], [[오르비에토]], [[토디]], [[나르니]], [[아멜리아]]까지 세력을 늘렸다. 그의 영지는 1354년에 [[교황령]]을 수복하라는 [[아비뇽]]의 교황의 명령을 받은 [[힐 알바레스 카리요 데 알보르노스|알보르노스]] 추기경에 의해 파괴되고만다. 1375년 비테르보는 조반니 디 비코의 아들, 프란체스코에게 지배권이 넘어갔지만, 13년뒤 비테르보 시민들은 그를 죽이고 처음으로 [[교황 우르바노 6세]]에게 도시 지배권을 넘겼고 다음에는 프란체스코의 사촌 [[조반니 디 시아라 디 비코]]에게 넘겼다. 하지만 1396년에 [[교황 보나파시오 9세]]의 군대는 그를 도시에서 몰아내고 도시에 교황의 종주권을 설립하였다. 비테르보에 세력을 지니던 마지막 디 비코 가문의 자코모는 1431년에 패배하고 만다.
 
그때부터 비테르보는 [[교황령]]에게 있어서 두 번째로 중요한 도시가 되었고 1871년에 [[이탈리아]] 영토로 편입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