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란드: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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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2500년경 그린란드에 [[이누이트]]가 정주하기 시작한 후 기원후 986년에 그린란드를 발견한 [[노르만 족]]인 [[에리크]]는 자신이 발견한 땅에 많은 사람이 이주하기를 바라 자신이 발견한 섬의 이름을 '초록의 땅'이라는 뜻인 '그린란드'로 명명한 때부터 그린란드에 노르만 족이 정착하기 시작했으나 이 노르만 족은 원주민인 이누이트 족과 충돌이 잦았고 수천 년간 살아오면서 그린란드의 빙설 기후에 완벽히 적응한 이누이트 족과 달리 기후에 적응하지 못했고 척박한 환경으로 말미암아 목재와 철을 위시해 자신의 문화를 보존할 자원이 부족하여 인구 증가에 대곤란을 겪어서 수효상·군사상 이누이트 족에 밀릴 수 밖에 없었다. 그것을 대표할 정도로 전형이 될 만하거나 특징이 있는 예로 1379년 이누이트 족에게 습격받아 노르만 족 남성 18명이 죽었는데 당시 노르만 족의 인구는 4000명에 불과했다. 이런 환경 속에서도 본토와 교류를 이용해 15세기까지 노르만 족은 그린란드에 거주하였으나 소빙기로 해안에 유빙이 생기면서 본토와 교류에 문제가 생긴 데다가 유럽에서 [[흑사병]]이 유행하면서 교류가 완벽히 중단되었고 그린란드의 노르만 족 거주지는 결국 소멸되었다. 그 후 18세기 초에 덴마크인이 그린란드 거주지를 재개척되면서 덴마크령 거주지가 되었다.
=== 자치권 회복 ===
[[냉전]] 시기에 [[미국|미합중국]]은 그린란드에 지정학상 관심해 왔고 [[1946년]] 미합중국은 덴마크에서 그린란드를 1억 달러에 사겠다고 제안하지만 덴마크는 거절했지만거절했고, 대신에 [[1950년]] 덴마크는 미합중국의 [[툴레 공군 기지]] 건립 제안을 수용해 [[1951년]] 건설을 시작한다. [[1953년]] 완성된 이 공군 기지는 [[나토]]의 방어 전략 일환이 된다.
 
그린란드는 [[1979년]] [[5월 1일]] [[덴마크 국회]]에 의해 자치권을 획득하지만 [[국가 원수]]는 덴마크 여왕이었고 외교권과 국방도 덴마크가 맡아 왔다. [[1985년]], 그린란드는 [[ECC]]의 상업상 어업 규제와 물개 가죽 제품 금지에 반발해 독자로 탈퇴하기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