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승대: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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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당시 서울을 출발하여 충주를 거쳐 영남으로 통하는 3번 국도는 장호원에서 직선 방향인 노은면을 가로질러 가도록 설계되어 있었으나 당시 그와 뜻을 같이하던 권사의(權思義) 등 3인의 반대 운동으로 결국 신니면 용원, 주덕면으로 돌아가게 건설되었다 한다. 훗날 당시의 반대 이유를 그는 대로가 마을로 날 경우 미풍양속을 해칠 염려 때문이었다고 아들 최식은 회상하였다. 실제로 이와같은 사례는 지방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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