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빈 카터: 두 판 사이의 차이

내용 삭제됨 내용 추가됨
편집 요약 없음
편집 요약 없음
3번째 줄:
[[1961년]] 프로 무대에 데뷔해 [[홀리 밈즈]] 등 도전자들을 상대로 승리를 거두며 명성을 얻었으며, [[1963년]] [[링 (잡지)|링]]에서 선정한 '10대 미들급 권투 선수' 중 한 명에 포함되었다. 이후 그 해 [[12월 20일]] 웰터급 챔피언이었던 [[에밀 그리피스]]를 상대로 1라운드만에 [[녹아웃]]시켜 주목을 받았으며, 미들급 챔피언이었던 [[조이 지아델로]]를 상대로 선전했으나 15라운드에서 패배했다. 그는 선수 시절 동안 40차례의 프로 경기를 가졌으며, 통산 27승 1무 12패의 성적을 거두었다.
 
이후 [[1966년]] [[뉴저지 주]] [[패터슨 (뉴저지 주)|패터슨]]의 한 식당에서 3명의 일행에게 총을 쏴 살해한 혐의로 친구인 존 아티스와 함께 경찰에 체포되었으며, 경찰은 카터가 타고 있던 차에서 범행에 사용된 탄약을 발견했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사건 현장에서 카터의 [[지문]]이 나오지 않았으며, 또한 카터를 대상으로 [[파라핀]] 테스트를 시행한 결과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1967년]] 뉴저지 주 지방 법원에서는 카터에게 종신형을 선고했으며, [[1976년]] [[보석 (법률)|보석]]으로 풀려났으나 그 해 다시 열린 재판에서 다시 유죄 판결을 받아 복역하게 되었다. 그러다 [[1985년]] 연방 지방 법원에서 기소측이 아무런 증거를 제시하지 못했음을 근거로 카터에게 무죄를 선고했으며, [[1988년]] 연방 대법원에서 무죄가 확정되어 [[인신보호영장]]으로 구금에서 풀려났다.
 
또한 [[1975년]] [[밥 딜런]]이 카터를 소재로 하여 만든 노래인 [[Hurricane (밥 딜런의 노래)|Hurricane]]을 발표했으며, [[1999년]] [[덴절 워싱턴]]이 카터를 소재로 하여 만든 영화 작품인 《[[허리케인 (영화)|허리케인]]》이 상영되었다. 그리고 [[1993년]]부터 [[2005년]] 까지 [[AIDWYC]]의 전무이사로전무 이사로 활동하기도 했다.
 
그 뒤 [[2012년]] [[전립선암]]으로 투병 생활을 하다가 [[2014년]] [[4월 20일]] [[토론토]]에 있는 자택에서 잠을 자던 도중 사망했다.
 
{{기본정렬:카터, 루빈}}
 
[[분류:1937년 태어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