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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라도 에우헤니오 마레로 라모스''' (Conrado Eugenio Marrero Ramos, [[1911년]] [[4월 25일]] ~ [[2014년]] [[4월 23일]])는 [[쿠바]]의 전 [[야구]] 선수이며, 포지션은 [[오른손잡이|우완]] [[투수]]이다. 흔히 '''코니에 마레로'''(Connie Marrero)라는 이름으로 알려져 있으며, [[쿠바]] 북부의 한 시골 마을 출신인 것에 착안해 ''El Guajiro de Laberinto''(라베린토의 [[농부]]라는 의미)이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다소 느린 구속을 보유했으며, [[커브 (야구)|커브]], [[슬라이더]], [[너클볼]]에 강점을 보였다.
 
[[1938년]] [[시엔푸에고스]]의 아마추어 팀에서 27세라는 다소 늦은 나이에 야구 경력을 시작했으며, [[1945년]]까지 쿠바 아마추어 리그에서 활약하며 명성을 얻었다. 또한 [[1939년]]부터 [[1943년]]까지 [[쿠바 야구 국가대표팀]]에 발탁되었으며, 팀의 [[야구 월드컵]] 우승 4회(1939년, 1940년, 1942년, 1943년) 및 준우승 1회(1941년) 공헌하였다. 이후 [[1946년]] [[큐반 리그]]의 [[알멘다레스]]에 입단했으며, [[1947년]] [[마이너 리그 베이스볼|마이너 리그]] 소속이었던 [[플로리다 인터내셔널 리그]]의 [[아바나 쿠반스]]로 팀을 옮겨 활약하였다.
 
이후 [[1950년]]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메이저 리그]]의 [[미네소타 트윈스|워싱턴 세너터스]]와 계약했으며, 그 해 38세의 나이로 프로 무대에 데뷔하여 당시 메이저 리그 소속의 최고령 선수 중 한 명이 되었다. 그 뒤 [[1951년]] [[아메리칸 리그]] 선발팀 소속으로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올스타전|올스타전]]에 출전하는 등 인상적인 활약을 선보였으며, [[1954년]] 은퇴를 선언하였다.
 
은퇴 이후 쿠바로 복귀해 [[아바나 슈가 킹스]]의 코치를 맡았으며, [[쿠바 혁명]] 이후 [[피델 카스트로]]가 정권을 잡은 이후에도뒤에도 쿠바에 남아 [[1961년]] 출범한 [[쿠바 내셔널 시리즈]]의 [[인두스트리알레스]]에서 투수 코치로 활동하였다.
 
그 뒤 [[2011년]] [[토미 말리노스키]]가 101세의 나이로 사망한 뒤에는 메이저 리그에서 활약했던 생존 인물 중 최고령으로 등극했으며, [[2014년]] [[4월 23일]] [[아바나]]에 있는 자택에서 102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뒤에는 당시 98세인 [[마이크 샌들록]]이 이어받게 되었다.
 
{{기본정렬:마레로, 코니에}}
 
[[분류:1911년 태어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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