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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듯 쿠데타가 성공을 거두자, 수양대군은 안평대군의 처벌을 형식적으로 반대하는 제스처를 취했다. 그러나 곧 [[안평대군]]을 강화도에 유배시켰다가 [[의금부]]를 통해 사약을 내렸으며, 살해된 조정 중신의 처첩, 자녀들을 노비로 전락시켰다. 그리고 정난공신 1등에 자신과 정인지, 그리고 사돈지간이었던 [[한확]] 등을 임명하고, 나머지 신하들을 2등, 3등으로 책록하여 조정의 주요 관직들을 독점했다. 수양 자신은 영의정과 군권을 모두 장악하여 사실상 재위의 기반을 갖추게 되었다. 또한 역적으로 단죄된 [[안평대군]] 등은 선원보략에서 삭제되었다가 훗날 [[조선 숙종|숙종]] 때 복권된다.
 
이 정난과 아주 밀접한 반란이 있었는데, 바로 김종서의 참모 [[이징옥]]이 일으킨 [[이징옥의 난]]이다. 김종서를 죽였다는 명분으로 일으켰지만, 이징옥 자신은 칭제건원을 하였다. '대금'이라는 국가를 세우고, 남만주의 오국성을 도읍으로 황제의 즉위하였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난도 얼마 못가 종성판관종성(鐘城)판관(判官) 정종鄭種과 대호군 이행검의 밀사로 살해당했고, 허무하게 이 난은 정리되었다.
 
수양대군과 정인지 등은 단종을 압박하여 집현전으로 하여금 자신을 찬양하는 교서(敎書)를 짓게 하는 등 집권태세를 굳혀갔다. 이렇게 조정을 완전히 장악하여 [[1455년]] 마침내 왕위를 차지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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