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이센: 두 판 사이의 차이

내용 삭제됨 내용 추가됨
편집 요약 없음
211.210.247.110(토론)의 13775808판 편집을 되돌림
2번째 줄:
[[파일:Flag of Prussia 1892-1918.svg|thumb|200px|프로이센의 국기.]]
 
'''프로이센'''({{llang|de|Preußen}}, {{llang|en|Prussia|프러시아}}, <small>[[고대 프로이센어]]:</small> Prūsa, {{llang|pl|Prusy}}, {{llang|lt|Prūsai}}, {{llang|la|Borussia, Prutenia}})이란 지명은 이 지역에서 중세 초부터 살기 시작한 [[발트어계]] 프로이센인에서 유래했다.프로이센은 [[1947년]]까지 [[독일]] 북부에 있었던 주로서 [[1918년]]까지는 [[베를린]]을 수도로 한 [[호엔촐레른 가]]의 [[왕국]]이었다. [[발트족]]의 일파인 '''프루사'''(<span style="font-size: small;">[[고대 프로이센어]]: </span>{{lang|de|Prūsa}})에서 이름을 땄다. 한국에서는 흔히 영어식 발음을 따서 '''프러시아'''라고 읽기도 한다. 과거에는 한자 표기로 '''보로사'''(普魯士) 혹은또는 '''보로서'''(普魯西)라 하기도 했다.
 
== 역사 ==
[[파일:Preussen1701.jpeg|thumb|250px|프로이센의 문장(紋章, 1701년)]]
=== 초기 ===
고대에는 발트계의 [[프로이센인]]이 살았으나, 12, 12세기경·13세기경 동독일 식민 운동식민운동, 독일 기사단의 정복을정복 등을 거쳐, 구츠헤르샤프트의 기초가 확립되었다. 1525년에 독일 기사단령은 프로이센 공국으로 되어, [[호엔촐레른 가]](家)가 지배하게 되었고, 1618년 [[브란덴부르크 주|브란덴부르크]] 선제후인 지기스문트가 공국을 상속하게 되어, 브란덴부르크·프로이센의 {{ja-y2|동군연합|(同君聯合}}<ref>同君聯合;한 군주 밑에 둘 이상의 나라가 결합된 상태. 사람에 관한 동군연합과 물질에 관한 동군연합의 두 가지 형태가 있으며, 1603년에서 1707년까지의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의 관계가 그 예이다.</ref>)이 성립되었다.
 
=== 왕국 성립 ===
1657년 {{ja-y2|대선제후|(大選帝侯}}) 프리드리히 빌헬름이 [[폴란드]]의 종주권에서 벗어나 1701년 브란덴부르크를 중심으로 왕국이 되었고되었으며, 프리드리히 빌헬름이 [[프로이센의 프리드리히 1세|프리드리히 1세]]로서 즉위한즉위하였다. 중앙집권화를이후 급추진하게급속히 중앙집권화를 하여추진시켜 관료제를 정비하고 군대를 강화하여 프로이센{{ja-y2| |(}})의 절대주의 체제를 확립했는데, 그 중심이 된 것이 구츠헤르이다.
 
18세기에 들어서자 [[프로이센의 프리드리히 2세|프리드리히 2세]]는 국내의 절대주의를 강화하면서강화하는 동시에 [[오스트리아 왕위계승전쟁]], [[7년 전쟁]] 등의 {{ja-y2|외정|(外征}})이용해통하여 [[슐레지엔]], 서프로이센을 병합하여병합함으로써 분산됐던분산적이었던 영토의 통일을 일보 진전하게 했다일보진전시켰다.
 
=== 나폴레옹 전쟁과 독일 통일 ===
{{독일의 역사}}
18세기 말부터 프랑스 자본가 혁명에 대항하여 [[대프랑스 동맹]]에 참가하였고참가하였으며, 또한 3회에 걸친 [[폴란드 분할]]에 참여하였으나참여하였다. 그러나 [[나폴레옹]]의 출현으로 예나·아우어슈테트 전투에서싸움에서 패하고패배하고 1807년 틸지트 화약을 체결해체결하여 나폴레옹에게사실상 지배받게나폴레옹의 지배를 받게 되었다. 이 패전을 계기로 슈타인과슈타인, 하르덴베르크에 의한 프로이센 개혁이 단행되었고단행되었으며, 또 {{ja-y2||(}})나폴레옹 해방전쟁에도 성공하였고, 이어 빈 체제하의 반동 시대에반동시대에 돌입하였다.
 
자유·통일 운동을 억압하다가 1848년의 3월 혁명을 맞았으나, 이 혁명은 실패하고실패로 끝나고, [[융커]]다운 지배 체제를 재강화했는데다시 독일관세동맹<ref>獨逸關稅同盟;1834년에 프로이센의 提唱으로 독일 여러 연방 간에 관세동맹강화하였다. 1844년까지그러나 오스트리아를반면 제외한 독일 연방 대부분이 참여하여 독일 통일의 경제상 기초를 이루었다.</ref>을관세동맹을 주최하여 통일에 일보 전진하였다. 이 무렵부터 독일 통일에 관하여 [[오스트리아 제국|오스트리아]]와 다투었으나, 비스마르크가 나타나면서부터는 군비를 강화하고, 1866년 프로이센·오스트리아 전쟁에서 승리를 얻어 독일 연방을 해산하게 하고해산시키고 북독일 연방을 건설했으며,건설하였다. 또한 프로이센·프랑스 전쟁의 결과, 1874년 성립된1871년 [[독일제국]]이 성립하였는데, 이 제국은 {{ja-y2||(}}프로이센 주의를)프로이센주의를 억압하여 프로이센 주의를 추진하게프로이센주의를 추진시켜 나아갔다나갔다.
 
프로이센은 [[11864년1864년]] {{ja-y2|대|對}}[[덴마크]]{{ja-y2|전|戰}}으로와의 전쟁으로 슐레스비히와 홀슈타인 지방을 획득하였다. 대왕 프리드리히 2세는 계몽계몽군주를 군주를자처하며 자처하면서강력한 국력을 강력히 키워 나아갔다키워나갔다. [[1866년]] [[프로이센-오스트리아 전쟁]]의 결과로 [[오스트리아 제국|오스트리아]]가 [[독일]] 연방에서 밀려나자, 프로이센은 [[독일]] 내의 최대 강국이 되었다. [[1870년]] [[프로이센-프랑스 전쟁]](보불전쟁)의 승리로 프로이센 왕 [[빌헬름 1세]]는 [[베르사유 궁전]]에서 즉위, 프로이센을 맹주로 한 [[독일제국]]이 성립하였다. [[1918년]] 독일이 구주대전에서1차 패하자대전에서 패전하자, 독일 황제 겸 프로이센 왕 [[빌헬름 2세]]는 퇴위하였고퇴위하였으며, 프로이센은 독일의 한 {{ja-y2|주|州}}가주가 되었다.
 
=== 세계대전과세계 대전과 해체 ===
구주대전제1차 세계대전 결과 독일제국은 무너지고 프로이센도 [[바이마르 공화국]]의 일부가 되었고, [[나치|국가사회주의독일로동자당]] 출현으로 이 공화국도 소멸되었으나, 실질에실질적으로는 부합하게는군부 군부에등에 그대로 남아 있던 프로이센다운프로이센적인 요소는 [[제2차 세계 대전|세계대전]]이 끝난 뒤에야 완전히 소멸되었다.
 
[[제2차 세계 대전|세계대전]] 패배패전 후에 프로이센은 한 개의 {{ja-y2|주|州}}로서주로서 존속되어 있었다. 당시 독일을 점령한 연합국 측은 프로이센을 해체하기로해체시키기로 결정하여, [[1947년]] [[2월 25일]]에 프로이센은 해체당했다해체되었다.
 
== 프로이센의 {{ja-y2||州}} ==
=== 독일 동맹에독일동맹에 가입한 10개 주 (1815년) ===
# [[브란덴부르크 주|브란덴부르크]] ([[베를린]])
# [[오스트프로이센]] ([[쾨니히스베르크]])
40번째 줄:
# [[작센]] ([[마그데부르크]])
 
이 열 개 지방 가운데에서 1822년 ‘윌리히 클레베 베르크’와 ‘니더라인’이 병합하여 라인 {{ja-y2|주|州}}가주가 되었고되었으며, 1829년에는 동프로이센과 서프로이센이 합하여 프로이센의 한 주로 되었다. 1866년 이후 왕국에 합병된 다른 여러 지역지역들 [[하노버 주|하노버]], [[헤센 나사우]], 그리고 [[슐레스비히 홀슈타인]]이 왕국의 새로운 {{ja-y2|주|州}}로주로 들어오면서 11개의 주가 되었다. 1878년에는 프로이센주가 동서로 다시 나뉘어동, 서로 나누어지므로서 12개 주가 형성되었으며 1919년에는 슐레지엔이 둘로 다시 둘로 분할되어 13개 주로 늘어났다.
 
=== 프로이센의 14개 주 (1925년)<ref>[http://www.gonschior.de/weimar/Preussen/index.htm Der Freistaat Preußen Überblick]</ref>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