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9 선언: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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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가 ==
6·29 선언은 [[6월 항쟁]]의 결과 시민들의 직선제 요구를 수용한 것이다. 제5공화국에 대한 국민들의 끊임없는 불신과 저항으로 궁지에 몰린 집권여당의 대표가 발표한 이 선언으로 인해 헌법 개정이 불가피하게 되었고, 현재까지 유지되고 있는 제8차제9차 개정헌법이 발의되었다. 제8차제9차 개정헌법은 1987년 10월 27일 총 유권자의 78.2%에 대당하는 20,038,672명이 국민 투표에 참여하고 이 중 93.1%가 찬성하여 수립되었다. 새롭게 개정된 헌법에 따라 대통령 선거가 치러졌으며 [[노태우]]가 [[대한민국의 대통령|제13대 대통령]]에 취임하였다. 제9차 개정헌법은 형식적으로는 헌법의 개정 절차를 따랐으나 실질적으로는 입헌민주주의를 지향하고 국민의 대표를 선출하는 방법을 변경하는 등 헌법의 제정이라 할 수 있을 정도의 변화가 있었다.<ref>최상주, 한국헌법학총론, 학문사, 1994, ISBN 8946731753, 100-103쪽.</ref>
 
한편, [[윤치영]]은 노태우 대표위원에 의한 민주화 선언은 무정부상태로까지 치달을 뻔한 우리나라를 쾌도난마를 끊는 솜씨와 같이 온국민에게 안도의 숨을 몰아쉬게 만들었<ref name="dd629">윤치영 《동산회고록:윤치영의 20세기》 (삼성출판사, 1991) 446페이지</ref> 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 노태우의 6.29 선언을 두고 국민에 대한 항복 선언이니, 어쩔 수 없는 궁여지책이니 하고 입방아를 찧는 일은 너무나도 정치적 선동에 치우친 감이 없지 않다<ref name="dd629"/> 는 의견을 나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