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자은사: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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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자은사는 [[모란]]의 명소로써도 널리 알려져 있고 그것을 읊은 많은 한시가 알려져 있다. 당 무종 회창 5년([[845년]])의 [[회창의 폐불]] 때에는 대천복사, 서명사, 대장엄사와 함께 폐사를 면했다.
 
[[명나라|명]](明) 가정(嘉靖) 29년([[1550년]])에 지금과 같은 모습의 대자은사가 건립되었다. 절 안의 종루에는 철제 범종 한 구가 걸려 있는데 가정 27년([1548년]])에 주조한 것으로 무게 3만 근에 위에 안탑신종(雁塔晨鐘)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다. 이는 관중팔경(關中八景)의 하나이다. 절 안의 모란정(牡丹亭)에는 70여 종에 달하는 모란이 심어져 있으며, 현장 법사의 기념관이 있다.
명 가정 29년([[1550년]])에 지금과 같은 모습의 대자은사가 건립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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