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지카타 도시조: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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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9년]] [[4월 9일]], 신정부군이 에조치 을부에 상륙을 개시하였다. 토시조는 [[후타마타구치 전투]]에서 신정부군의 진격에 대하여 철저하게 방어전을 펼쳤다. 그 전투 중에 신정부군은 방울의 소리를 내며, 포위당했다고 생각되게 하는 행동을 하여, 자군이 포위당했다고 생각한 토시조 군은 동요했다. 그것에 대해 "정말로 포위하려 한다면, 소리를 숨겨서 눈치채지 못하게 한다."라고 냉정하게 상황을 판단하여 부하들을 진정시켰다. 또 싸우는 동안 토시조는 부하들에게 직접 술을 돌렸다. 그러고는 "취해서 군율을 어지럽히면 곤란하므로 전부 한잔 뿐이다."라고 말하였기에 부하들은 웃으며 따랐다고 전해진다. 토시조군이 사수하였던 후타마타구치는 연전연승. 그러나 또 다른 한편, 마츠마 에구치가 돌파당해서 퇴로가 끊겨서 위험이 닥쳤기에 어쩔수 없이 후타마구치에서 퇴거하여 고료카쿠로 귀환했다.
 
그리고 [[1869년]] [[5월 11일]](음력), 신정부군의 하코타테총공격이 시작되어, 신센구미대원 시마다카이가 수비를 하고 있던 [[벤텐다이바]]가 신정부군에게 포위당해 고립되어서 토시조는 [[농성전]]을 싫어하여 적은 병력을 이끌고 출진하였다. 신정부군함 '아사히'가 군함에 의해서 격침당하는 것을 보고 "이 기회를 놓치지마라!"라고 외쳤으나, 하코타테잇폰기관문에 육군사령보좌 역 [[오노 우츄]]에게 패배당하고 오는 동료들을 이끌고 진군시켜 "우리들의 법도에 따라 도망가는 자는 벤다!"라고 외쳤다. 토시조는 잇폰기관문을 수비하여 일곱 겹으로 조여오는 신정부 군에게 응전하였으며, 말 위에서 지휘를 했다. 그 난전 중에 총탄이 복부를 관통하여 낙마, 측근이 급히 다가 왔을 때는 벌써 절명했다고 전해진다. 적의 총탄이 아닌 쏟아지는 탄에 맞았다는 것이 통설이지만, 항복을 완강하게 반대하는 토시조를 제거하기 위해 아군의 손에 의해 암살당했다는 설도 있다. 토시조의 생명에 의해 타이바방면에 진군해있던 오노가 이끄는 병사들은 잠시동안 세력을 돌렸지만, 돌연 날뛰어서 오노의 필사의 지휘에도 불구하고 모두 무너져버렸다. 오노가 야무를 어쩔 수 없이 돌아섰을 때, 똑같이 육군사령부보좌 역의 안토우 사스케로부터 토시조의 전사 사실을 들었다고 전해진다. 토시조의 유체는 다른 전사자들과 함께 고료카쿠에 이장되었다고도 하고, 다른 장소에 안치했다고도 전해진다. 그 장소는 알려져 있지 않다. 항년 35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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