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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페트루치 시대 ===
노베스키 당은 1487년 [[판돌포 테트루치]]가 통치하던 시에나로 돌아왔다. 판돌포는 서서히 많은 공직 자리들을 거머줬고 그의 장인인 니콜로 보르게세(Niccolò Borghese)가 피렌체와 [[나폴리의 알폰소 2세]]의 지원을 받아, 자신을 제거하려 했다는 음모로 처형시키게 되는 1500년까지 영향력을 키웠고, 판돌포는 그후 시에나에 대한 완전한 장악 할 수 있었다. 독재자이긴 했어도, 판돌포는 예술과 과학과 더불어 경제 향상등 시에나의 번영을 가져다 주었다. 판돌포는 자신의 자리를 아들인 [[보르게세 페트루치]]에게 물려주었지만, 4년만에 보르게세는 [[교황 레오 10세]]의 도움을 받은 그의 친척인 [[라파엘로 페트루치]] 추기경에게 내쫒긴다. 교회로부터 추가 책무를 부여받은, 라파엘로는 군대를 이끌고 판돌포의 막내 아들인 파비오에게 추방당하기 전, 1년간 시에나를 통치했던 라파엘로의 조카인 프란체스코 페트루치를 상대로 공성전을 벌였다. 파비오가 1525년 시에나인들에게 추방당하면서, 페트루치의 시대는 막을 내린다.
 
=== 공화국의 종말 ===
페트루치 시대의 끝과 함께, [[교황 클레멘스 7세]]의 지원을 받은 노베스키 당을 몰아내려는 대중 세력간의 내부갈등이 재개되었고, 클레멘스 7세는 시에나로 군대를 파견하지만, 1526년에 카몰리아(Camollia)에서 패배했다. 신성 로마 제국 황제 [[카를 5세]]는 시에나에 [[스페인]] 수비대를 파견하여, 이 혼란스러운 상황을 이용하였다. 시에나 시민들은 [[프랑스]]와 동맹을 맺으며, 1552년에 스페인 수비대들을 몰아냈다. 이는 카를 5세에게 용납 할 수 없는 행위였고, 그의 장군인 [[잔 자코모 메디치]]을 보내어 피렌체-제국 동맹군과 함께 시에나를 포위하도록 하였다.
 
시에나 정부는 [[피에트로 스트로치]]에게 수비를 맡겼다. 이후 [[마르차노 전투]] (1554년 8월)에 패배하면서, 더이상의 남은 희망을 잃고 말았다. 18달 동안의 저항 끝에 1555년 4월 17일 항복하며 공화국은 끝이 나게 된다. [[메디치 가문]]에게 엄청난 빚을 지고 있던 새롭게 왕위에 오른 스페인 [[펠리페 2세]]는 이곳([[프레시디국]]에 합병되어 해얀요새들이 있던 영토)을 [[토스카나 대공국]]에 넘겨주었고, 19세기에 [[|이탈리아 통일|이탈리아가 통일]]될 때까지 토스카나 대공국에 속해있었다. 시에나 공화국 정부 인사 귀족 700여명은 1559년까지 [[몬탈치노]]에서 거주했었다.
 
== 영토 ==
 
== 함께 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