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부 (고려):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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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87년]] 2월 첨의중찬(僉議中贊) 원부(元傅)가 졸하였다.<ref>《고려사절요》 제21권 충렬왕 3(忠烈王三)</ref>
 
== 일화 ==
찬성사(贊成事) [[원부 (고려)|원부]](元傅)의 문생(門生) 중 [[방우선]](方于宣)이 있다. [[1275년]] 원부가 근무를 마치고 물러 나와 밥을 먹는데 문생 너댓 명이 와서 뵈었다. 자리를 권한 후, “내가 외람되이 재상(鈞衡)의 우두머리가 되었으나 재능이 뜻에 미치지 못하는데 많은 사람들의 평판은 어떠한가?”하고 물었다. 다들 감히 대답하지 못했는데, 학사 [[방우선]](方于宣)이 “사람들이 말하기를 ‘공께서 정치를 하시는 것이 그 성(姓)과 같다.’고 합니다.”라고 대답하니 원부가 크게 웃었다.<ref>원부(元傅) - 국역 고려사 열전, 2006.11.20, 경인문화사</ref>
 
== 가족 관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