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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 후, [[호세 가스파르 로드리게스 데 프란시아|프란시아]]의 중심으로 독재체제를 유지하면서 경제를 발전시키는 노력을 했다. 그의 아들인 [[C.A.로베스]]동안에도 외국자본을 들어오게 하여 경제를 발전시켰지만, 파라과이는 브라질과 아르헨티나, 우루과이와 [[삼국동맹전쟁]]에서 5년간 남아메리카 역사상 가장 피비린내 나는 전쟁 끝에 1870년에 패배하여 나라가 파괴되고 인구가 크게 줄었다. 특히 파라과이의 독재자 프란시스코 살라노 로페스가 이 전쟁에서 전사하였으며 파라과이 남자인구의 90%에 달하는 인구가 이 전쟁을 목숨을 잃어 수많은 전쟁미망인이 양산되기도 했다. 파라과이는 과거 전체가 파라과이의 영토였던 [[이구아수 폭포]]의 상당 부분을 뺏기는 등 브라질과 아르헨티나에 영토를 크게 잃었다. 그리고 친[[아르헨티나]], 친[[브라질]]로 대립하다가, 1930년대 [[차코 전쟁]]에서 파라과이는 [[볼리비아]]를 무찔렀다. 파라과이는 [[차코]] 지역에 대한 영유권을 되찾았으며, 평화의 대가로 영토를 더 얻었다.
 
역사가와 교육자, 정치가들은 파라과이 역사에 대해 많은 논쟁을 벌이고 있다. 이 나라의 역사적 사건, 특히 전쟁에 대한 공식적인 서술은 나라에 따라 차이가 난다. [[콜로라도당 (파라과이)|콜로라도당]]과 자유당은 파라과이 역사의 독특한 공식 서술을 유지했다. 1869년 아순시온 점령 당시 브라질 제국군은 파라과이 국립 문서기록소 자료를 찾아 [[히우 지 자네이루]]로 가져가서 비밀로 지켰으며, 그래서 파라과이의 식민 시대와 초기 역사를 연구하기는 힘들다.
 
=== 스트로에스네르 정권과 민주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