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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현'''(法顯: 함강 3년([[337년|337]])~영초 3년([[422년|422]]))은 [[중국]] [[동진]]의 [[승려]]이다. 속성(俗姓)은 공(龔), 평남군(平陽郡) 무양현(武陽縣, 지금의 [[산시 성 (산서성)|산시 성]]에서) 출생하여 3[[나이|세]] 때부터 [[사찰|절]]에 들어가 불도를 [[공부]]하였다사람이다. 당시의 중국에는 [[불교]] 문헌이 별로 없었으므로 [[399년]]에 [[서역]]을 통하여 [[인도]]로 건너가 [[범어]]를 배우고, 그곳에서 불전과 불적을 살펴본 뒤 불교 [[책|서적]]을 구하여 [[413년]]에 귀국하였다. 《[[대반니원경]]》 등 많은 불교 서적을 [[번역]]하였다.
 
== 생애 ==
3[[나이|세]] 때부터 [[사찰|절]]에 들어가 불도를 [[공부]]하였고, 20세에 구족계를 받았다. 당시 사람들은 「뜻과 행동이 명민하고 의궤는 엄숙하였다」(志行明敏、儀軌整粛)고 사람됨을 평하고 있다.
 
당시의 중국에는 [[불교]] 문헌이 한역된 것이 별로 없었으므로 경률에도 착오나 누락이 많았다. 법현은 융안(隆安) 3년([[399년]])에 혜경(慧景), 혜응(慧応), 혜외(慧嵬), 도정(道整) 등의 승려와 함께 장안(長安)을 출발해 [[서역]]으로 떠났다. 도중에 부탄 왕국을 거쳐 6년만에 중[[인도]](중천축)에 닿았고, [[범어]]를 배우고, 그곳에서 왕사성(王舎城) 등의 불전과 불적을 살펴본 뒤 마하승기율(摩訶僧祇律), 잡아비담심론(雑阿毘曇心論), [[스리랑카]]를 돌며 오분률(五分律), 장아함경(長阿含経) 등의 불교 [[책|서적]]을 구하고 의희(義熙) 9년([[413년]])에 남해 항로를 따라 청주(지금의 산둥 성)으로 귀국하였다. 귀국한 것은 법현 한 사람뿐이었다고 한다.
 
법현이 기록한 여행기는 《불국기》(佛國記)라는 제목으로, 당시 중앙아시아와 인도에 관한 귀중한 사료가 되고 있다. [[돈황]](敦煌)에서 흐르는 모래를 건너던 때의 모습에 대해 「사하(沙河)에는 악령(悪霊)과 뜨거운 바람이 많이 있어서 모두 죽고 단 한 명도 그 목숨을 보전하지 못했다. 하늘에는 새도 날지 않고 땅에는 뛰는 짐승도 없다. 멀리 보아도 눈 닿는 데 없고 갈 곳도 알지 못한다. 다만 죽은 자의 해골이 이정표가 될 뿐이다.」라고 적었다.
 
귀국한 뒤 법현은 건강(建康)에서 불타발타라(仏陀跋陀羅)를 만나 그가 가져온 《대반열반경》(大般涅槃経), 《[[대반니원경]]》 등 많은 불교 서적을 [[번역]]하고, 열반종(涅槃宗) 성립의 기초를 닦았다. 《마하승기율》(摩訶僧祇律) 40권을 번역하였다. 법현은 형주(荊州)의 신사(辛寺)에서 죽었다. 향년 86세. 입적한 뒤, 《오분율》(五分律)도 불태습(仏駄什)이 번역하였다.
 
== 참고 문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