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수 대첩"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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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군은 좌익위대장군(左翊衛大將軍) [[우문술]](宇文述), 우익위(右翊衛)대장군 [[우중문]](于仲文), 좌효위(左驍衛)대장군 형원항(荊元恒), 우익위장군<ref>《삼국사기》에는 우익위대장군이라 하였으나 오기이다. 《수서》65권 열전 제30 설세웅, 《[[북사]]》76권 열전 제64 설세웅, 《자치통감》을 따른다.</ref> [[설세웅]](薛世雄), 우둔위(右屯衛)장군 [[신세웅]](辛世雄), 우어위(右禦衛)장군 장근(張瑾), 우무후(右武侯)장군 조효재(趙孝才), 탁군(涿郡)태수 검교좌무위(檢校左武衛)장군 최홍승(崔弘昇), 검교우어위대장군<ref>《수서》63권 열전 제28 위현, 《북사》76권 열전 제64 위현. 《자치통감》과 《삼국사기》에서는 검교우어위호분랑장(虎賁郞將)이라고 하였다.</ref> [[위문승]](衛文昇)이, 수군(水軍)은 우익위대장군<ref>《삼국사기》에는 좌익위대장군이라 하였으나 오기이다. 《수서》64권 열전 제29 내호아, 《북사》76권 열전 제64, 《자치통감》을 따른다.</ref> [[내호아]](來護兒), 좌무위(左武衞)장군<ref>《수서》65권 열전 제30 주법상</ref> [[주법상]](周法尙)이 지휘하였다.
 
육군보다 빠르게 평양의 패수(浿水, 지금의 [[대동강|패수]](浿水)에 도착한 내호아는 부총관(副摠管) 주법상의 제지에도 불구하고 단독으로 [[장안성 (고구려)|평양성]]을 공격했다가 대파당했다. 이로써 평양성으로 향하는 별동대는 305,000명의 육군만이 남았다.
 
== 진행 ==
별동대는 원래 100일치 [[식량]]과 [[방패]], [[갑옷]], [[옷감]], [[무기]] 등 온갖 물자를 갖추어 [[행군]]을 시작하였으나 병사들이 3섬 이상의 [[무게]]를 감당하지 못했다. [[쌀]]과 [[조 (식물)|조]]를 버리고 가는 자는 [[목]]을 베겠다는 군령이 떨어졌음에도 모두 군막 아래에 구덩이를 파고 묻었다. 그래서 행군 도중부터 식량 부족에 시달렸다.
 
이때 고구려 장수 [[을지문덕]](乙支文德)이 거짓 [[항복]]하며 수군(隋軍)의 군영에 들어가서 그 허실을 보았다. 을지문덕이 오면 사로잡으라는 [[수 양제|양제]]의 밀지를 받았던 우문술과 우중문은 그를 억류하고자 하였는데 위무사(慰撫使)로 종군하고 있던 상서우승(尙書右丞) [[유사룡]](劉士龍)이 말려서 그만두고 돌아가게 하였다. 그러나 이내 후회하여 을지문덕을 다시 오라고 하였지만 그는 돌아보지도 않고 [[압록강|압록수]](鴨綠水, 지금의 [[압록강]])를 건너가버렸다.
 
우문술은 을지문덕도 놓쳤고 식량도 다 떨어져서 돌아가려고 했지만, 우중문은 성을 내며 계속 나아갈 것을 주장하였다. 우문술 역시 언성을 높였으나, 일전에 양제가 우중문에게는 계획성이 있으니 절도를 품어서 자문을 구하라고 하였기에 부득이 따를 수밖에 없었다.<ref>《수서》60권 열전 제25 우중문</ref> 압록수를 건너 을지문덕을 추격하여 초반에는 하루에 7번 싸워 모두 이겼다. 여러 번 [[승리]]한 것을 믿고 계속 진격하니 살수를 건너 평양성에서 30[[리]] 떨어진 곳까지 와서 진을 쳤다.
그러나 이것은 모두 을지문덕의 기만에 의한 유도 작전이었다. 수군(隋軍)의 군사가 굶주린 기색이 있음을 보고 이들을 [[피곤]]하게 만들려고 매번 싸울 때마다 달아났던 것이었다. [[을지문덕]]은 [[우중문]]에게는 희롱하는 [[시 (문학)|시]]를 보내고, [[우문술]]에게는 거짓 항복하며 만약 [[군대]]를 돌리면 [[영양왕|왕]]을 모시고 행재소(行在所)로 가서 뵙겠다고 하였다. 수군(隋軍)은 지칠대로 지쳐서 다시 싸우기가 힘들었던 데 반해 [[평양]]성은 험하고 견고하여 단숨에 함락시키기가 어려웠다. 그리하여 하는 수 없이 거짓 항복을 명분으로 삼아 회군을 시작하였다. 그래도 아직까지는 건제를 유지하여 방진(方陣)을 갖추며 퇴각하였고 이에 을지문덕은 끈질기게 추격하여 가다 싸우기를 반복하였다.
 
7월(음력), 마침내 수군(隋軍)이 [[청천강|살수]]에 이르러 반쯤 건너자, 고구려군이 뒤에서 후군을 공격했고 [[수나라]] 장수 [[신세웅]]이 [[작전 중 사망|전사]]하였다. 이에 여러 군대가 함께 무너져서 걷잡을 수 없게 되니 장수와 병사들이 달아났다. 하루 밤낮 만에 [[압록강|압록수]]에압록수에 닿았으니 그 거리가 450리였다. 이때 [[왕인공]](王仁恭)이 최후의 부대가 되어 가까스로 고구려군을 막아냈다. 평양 밖 포구에 주둔하고 있던 [[내호아]]도 살수대첩의 소식을 듣고는 퇴각하였다.
 
== 결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