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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주명은 [[중화민국]]의 [[타이완]]에서 곤충 채집 여행 때 비를 맞지 않으려고 나무에 모인 하루살이들을 채집할 만큼 끈기가 있는 학생이었다. [[일본]] [[가고시마 시|가고시마]] 고등농림학교 졸업 후에는 [[송도고등학교|송도중학교]]에서 생물 교사로 일하면서 [[한반도]]의 [[나비]]에 대해서 연구했다.
 
이는 가고시마 고등농림학교 재학 시 지도 교수였던 오카지마 교수의 충고에 따른 것이었다. [[일본]] [[가고시마 고등농림학교]]를 졸업할 즈음의 석주명에게 교수는 장래를 물었는데, 석주명은 [[차별]] 때문에 학자가 될 수 없다고 하였다. 그러자 교수는 “한 분야에 10년간 집중하면 그 분야의 전문가가 된다”며 [[한반도]]에 사는 [[나비]] 연구를 권했고, 석주명은 교수의 충고를 받아들여 나비를 연구하게 되었다.
 
[[한국 전쟁]] 도중 [[1950년]] [[9월]] 말 [[서울특별시|서울]]에 있던 [[국립과학관]]이 폭격을 맞으면서 그가 20여 년 동안 75만 마리의 [[나비]]를 채집하여 만든 나비 표본이 모두 타고 말았다. 당시 석주명은 너무 상심이 커서 식음을 전폐할 정도였다. 석주명 자신도 [[1950년]] [[10월 6일]] [[조선인민군]]으로 오인받아 [[총]]에 맞아 죽었다. 제자들이 거적에 싸인 시체를 발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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