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석 (군인): 두 판 사이의 차이

내용 삭제됨 내용 추가됨
Shirobot (토론 | 기여)
잔글 →‎주석: 白:사:Ysjbserver요청으로 {{주석}}을 {{각주}}로 바꿈 total:18220, replaced: {{주석 → {{각주 using AWB
편집 요약 없음
1번째 줄:
'''이인석'''(李仁錫, ? ~ [[1939년]] [[6월 22일]])은 [[일제 강점기]] 지원병이란 미명하에 강제로 끌려가 이역만리에서 전사했다군인이다.
 
== 생애 ==
[[충청북도]] [[옥천군]] 군서면 출신이다. 8남매의 맏아들로 태어나 지금은 폐교된 옥천농업실습학교를 졸업하였다. 이 학교에 강사로 취업하였다가 지원병이란 명목으로지원병으로 [[중일 전쟁]]에 강제로 끌려가참전하였고, [[중국]]에서 전사하였다. 계급은 [[일본군]] 상등병이었다상병이었다.
 
이인석은 [[1938년]]에 지원병 제도가 실시된 이래 처음으로 전사한 조선인이라, 제1호 전사자로 크게 선전되었다. 많은 훈장을 받고 언론에도 사망 소식이 "지원병 이인석군 최초의 영예의 전사"로 보도되었다.<ref>{{뉴스 인용
11번째 줄:
|작성일자=2003-12-01
|확인일자=2008-08-26
}}</ref> 옥천 이인석의 집으로는 교사가 인솔하는 학생들을 포함해포함하여 순례객이 찾아 왔고찾아왔고, 가족들은 부의금을 받아 생계를 유지하였다.
 
[[허영 (영화 감독)|허영]]의 영화 《너와 나》에는 이인석을 모티브로 삼은 주인공이 [[일본인]]과 결혼하고 출정 전에 [[부여신궁]]에 참배하는 내용이 나오는 등, 일제강점기일제 강점기 말기의 전쟁 홍보에 널리 이용되었다.<ref>{{서적 인용
|저자=이이화
|제목=한국사 이야기 22 (빼앗긴 들에 부는 근대화 바람)
22번째 줄:
|장=제1부 식민지에 불어오는 근대화 바람 - 4. 활동사진 보러 단성사 간다
|꺾쇠표=예
}}</ref> 김동환의 시 〈권군취천명(勸君就天命)〉을 포함하여 이인석을 소재로 한 예술 작품이 여러 장르에서 만들어졌다. 소설가 [[박완서]]는 자전성을 띤자전적 소설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에서, 이인석의 일대기를 담은 [[나니와부시]]가 매일 방송되었다고 회고한 바 있다.<ref>{{서적 인용
|저자=박완서
|제목=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33번째 줄:
}}</ref>
 
사망 당시 이인석에게는 아내와 갓 태어난 딸이 있었다. 부인은 조카를 양자로 들여 이인석의 대를 잇게 하였다. [[2003년]]의 《옥천신문》 보도를보도에 보면따르면, 부인과 동생을동생 위시해 가족들가족들은 이인석이 자발적으로 지원병이 된 것이 아니라 강사로 재직하던 학교장을학교의 위시해교장 제3자가 종용한제3자의 탓에종용으로 강제로 끌려가 전사했다고희생된 것이라고 밝혔다주장하였다.<ref>{{뉴스 인용
|url=http://www.oki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15592
|제목=발굴 옥천현대사 - "형님이 이용당한 것...''
53번째 줄:
}}
 
== 주석각주 ==
{{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