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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스토리우스파'''(Nestorianism) 또는 '''경교'''(景敎)는 [[콘스탄티노플]]의 [[네스토리우스]](?∼451?)총주교를 시조로 하는 [[기독교]]의 일파를 말한다. [[아시리아 동방교회]]로 소급된다.
 
== 교의 ==
=== 그리스도론 논쟁 ===
[[그리스도]]의 위격은 하나가 아니며, 신격과 인격을인격이라는 구별하는 그리스도개의 이성설성격으로 분리 구별된다고 보았다(이성설二性說),. 이것은 구세주(그리스도)의 신격은 예수의 복음서에 깃들고 인격은 사라진 육신 안에 있음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이 경우 인성으로써 예수를 낳은 [[마리아 (예수의 어머니)|성모 마리아]]에게는 하느님의 어머니([[테오토코스]], Θεοτοκος)라는 호칭을 사용할 수 없다는없다고 주장을 하여주장하였고, 결국 [[431년]] [[에페소스 공의회]]에서 [[이단]]으로 판정된 네스토리우스는 면직 파문되어 [[리비아]]로 추방되었다.
 
== 역사 ==
=== 개요 ===
알렉산드리아 학파 출신의 [[알렉산드리아 총대주교]] [[키릴로스]]와 안티오키아 학파 출신의 [[네스토리우스]] 사이의 갈등에서 시작되었다. 네스토리우스는 그때까지 고대 교부(敎父)들이 마리아에 대해 사용하던 칭호 테오도코스(Θεοτοκος: 신θεος을 낳은 자τοκος 즉 성모)를 부정하고, 마리아는 크리스토토코스(Χριστοτόκος: 그리스도 Χριστος을 낳는 자 τοκος)라고 주장하였다. 그 이유는 예수는 신성과 인성이라는 두 개의 위격(휘포스타시스υποστασις)이지만, 마리아는 어디까지나 인간적 위격(인격)을 낳았을 뿐이라는 것이었다. 반면 키릴로스는 그리스도의 본성(피시스φυσις)은 신성과 인성으로 구별되지만 위격로서는 유일하다(위격적 결합: hypostatic union, ένωσις καθ΄ υπόστασιν)며 반박했다.
 
네스토리우스는 에페소스 공의회에 참석을 거부했고, 네스토리우스가 공의회에서 파문된 뒤 네스토리우스파는 [[498년]]에 크테시폰 셀레우키아(Seleucia)에 새로운 총대주교를 세웠다. 7세기 중기까지 페르시아 일대의 네스토리우스파 기독교에 대해서는 《시일토 연대기》에 상세하다. 현재는 [[이라크]] 북부의 [[아시리아]] 지역에 산재하고 있으며 미국과 호주 이민자를 중심으로 신도가 존재하고 있다.
 
네스토리우스파 교회인 [[아시리아 동방교회]](그리스 정교로도 불리는 정교회와는 별개의 계통)의 일부는 [[1553년]]에 로마로 돌아와(Sulaqa) 칼데아 전례 카톨릭 교회(귀일교회, 동방전례 카톨릭 교회의 하나)라 불리게 되었다. 아시리아 동방교회와 칼데아 카톨릭 교회는 현재도 중동 아시리아에서 활동하고 있다.
 
=== 동방 기독교 ===
네스토리우스의 이론은 [[424년]]경부터 [[이집트]], [[시리아]], [[팔레스티나]] 지방 및 [[인도]]까지도 전파되었다. 또 [[당 태종]] 때인 [[7세기]]에는 [[중국 대륙]]에서 '''경교'''(景敎)라 불렸고, 그 교회를 파사사(波斯寺)라 불렀다. [[당 현종]](玄宗) 때에는 대진사(大秦寺)라 개칭하고, 각지에 이를 건립하여 교세를 제법 떨쳤다고 전해진다. 그 후 200년간 명맥을 유지하였으나, [[당 무종|무종]] 때 박해를 받아 쇠퇴하였다. 그러나 [[몽골]]의 [[원나라]] 치하(治下)에서는 그 신앙이 허락되어 신자와 교회가 증가하였고 그때는 예르게운(야리가온)이라 불리었다.
 
[[당 태종]] 때인 [[7세기]]에는 [[중국 대륙]]에도 전래되어 '''경교'''(景敎)라 불렸고, 그 교회를 파사사(波斯寺)라고도 불렀다. [[당 현종]](玄宗) 때에는 대진사(大秦寺)라 개칭하고, 각지에 이를 건립하여 교세를 제법 떨쳤다고 전해진다. 초기 당 조정은 황족을 포함한 지배층에 북방 유목민족(선비, 흉노)적 요소가 농후하였고, 경교나 불교 등 비(非)중화계 종교에 대해서도 관용을 보였으며, 신앙의 용인과 보호를 받으며 2백 년 동안 번성하였다. 그러나 당 말기 왕조를 전통적인 중화 왕조의 위치를 굳건히 하게 된 뒤 탄압으로 소멸하였다(참고: [[회창의 폐불]]).
 
[[몽골]]의 [[원나라]] 치하에서는 그 신앙이 허락되어 신자와 교회가 증가하였고 그때는 예르게운(야리가온)이라 불리었다. 몽골 제국을 구성하게 될 몇몇 북방 유목민들에게도 포교되어 칭기즈 칸 계통의 일부 가계나 이들과 사돈 관계에 있는 몽골 제국의 정치적 중추를 구성하는 일족으로써 이를 열심히 믿는 유목 집단이 많았다. 그래서 전 시대에 일시 중국 본토에서도 부활하게 됐다. 다만, 몽골 제국이 붕괴된 뒤, 제국의 중추를 구성하고 있던 여러 유목 집단은 서쪽에서는 [[이슬람교]]와 터키계 언어를 수용하여 튀르크(터키인)을 자칭하게 되고, 동방에서는 [[티베트 불교]]를 신앙해 몽골어 계통의 언어를 유지한 몽골을 자칭하는 세력과 [[오이라트]]를 칭하는 세력의 양대 세력으로 나뉘며, 네스토리우스파 기독교를 믿던 유목 집단은 그 사이에서 매몰, 소멸하고 말았다.
 
=== 한반도 전래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