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스토리우스파"의 두 판 사이의 차이

 
=== 동방 기독교 ===
[[파일:Museum für Indische Kunst Dahlem Berlin Mai 2006 061.jpg|250px|섬네일|오른쪽|7~8세기경 중국에 전래된 네스토리우스파의 제례([[성지제성지주일]] 묘사한 것)]]
{{Main|대진사}}(大秦寺)
네스토리우스의 이론은 [[424년]]경부터 [[이집트]], [[시리아]], [[팔레스티나]] 지방 및 [[인도]]까지도 전파되었다.
 
[[당 태종]] 때인 [[7세기]]에는 [[중국 대륙]]에도 전래되어전래되었다. 페르시아인 사제인 「아라본」(阿羅本) 등에 의해 전래된 네스토리우스교는 '''경교'''('''景敎''')라 불렸고, 그 교회를 파사사(波斯寺)라고도 불렀다. 경교라는 이름은 중국어로 빛의 신앙이라는 의미가 있으며, [[당 현종]](玄宗) 때에는 경교 교회인 파사사는 대진사(大秦寺)라 개칭하고, 각지에 이를 건립하여 교세를 제법 떨쳤다고 전해진다. 초기 당 조정은 황족을 포함한 지배층에 북방 유목민족(선비, 흉노)적 요소가 농후하였고, 경교나 불교 등 비(非)중화계 종교에 대해서도 관용을 보였으며, 신앙의 용인과 보호를 받으며 2백 년 동안 번성하였다. 그러나 당 말기 왕조를 전통적인 중화 왕조의 위치를 굳건히 하게 된 뒤 탄압으로 소멸하였다(참고: [[회창의 폐불]]).
 
초기 당 조정은 황족을 포함한 지배층에 북방 유목민족(선비, 흉노)적 요소가 농후하였고, 경교나 불교 등 비(非)중화계 종교에 대해서도 관용을 보였으며, 신앙의 용인과 보호를 받으며 2백 년 동안 번성하였다. 그러나 당 말기 왕조를 전통적인 중화 왕조의 위치를 굳건히 하게 된 뒤 탄압으로 소멸하였다(참고: [[회창의 폐불]]).
 
[[몽골 제국]]의 [[원나라|원]](元) 왕조 치하에서는 그 신앙이 허락되어 신자와 교회가 증가하였고 그때는 예르게운(야리가온)이라 불리었다. 몽골 제국을 구성하게 될 몇몇 북방 [[유목민]]들에게도 포교되어 칭기즈 칸 계통의 일부 가계나 이들과 사돈 관계에 있는 몽골 제국의 정치적 중추를 구성하는 일족으로써 이를 열심히 믿는 유목 집단이 많았다. 그래서 전 시대에 일시 중국 본토에서도 부활하게 됐다. 다만, 몽골 제국이 붕괴된 뒤, 제국의 중추를 구성하고 있던 여러 유목 집단은 서쪽에서는 [[이슬람교]]와 터키계 언어를 수용하여 튀르크(터키인)을 자칭하게 되고, 동방에서는 [[티베트 불교]]를 신앙해 몽골어 계통의 언어를 유지한 몽골을 자칭하는 세력과 [[오이라트]]를 칭하는 세력의 양대 세력으로 나뉘며, 네스토리우스파 기독교를 믿던 유목 집단은 그 사이에서 매몰, 소멸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