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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제후들의 세력이 점차 강화되고 여러 세대가 흘러 제후와 주나라 왕실간의 혈연 관계도 약화되면서 종법 질서를 중심으로 한 통제 체제가 약화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주나라 왕실이 이민족의 침략으로 수도를 상실하고 낙읍(洛邑)으로 옮겨오면서 실질적인 국력 우위마저 사라지게 되자 중앙 정부의 통제력이 완전히 소멸되고 혼란기가 찾아왔다. 이 혼란기를 [[춘추 전국 시대]]라고 하며, 전반기인 [[춘추 시대]]에는 주나라 왕실의 권위를 존중하여 제후들이 [[패자]]를 중심으로 왕실을 보호하는 양상이었으나 후반기인 [[전국 시대]]가 되면 제후들이 모두 왕을 자칭하고 주나라 왕실과 동등한 독립국으로 행세하기에 이르렀다. 이로써 주나라의 제도로서의 봉건제도는 완전히 소멸되었다.
 
[[한나라]] 이후 중국의 여러 왕조는 황족들을 제후왕으로 책봉하는 '''봉건''' 전통은 형식적으로 부활하여 유지되었으나, 실질적인 제도는 주나라의 봉건제도와 달랐다. 분봉된 제후왕들은 실권을 가지지 못했으며, 제후왕들의 영지를 포함한 모든 지역은 황제가 임명한 행정관이 일정한 임기 동안 다스리는 군현제로 통치되었다. 제후왕들의 제후국은 이름만 국(國)이었을이고 행정관의 직명만 달랐을 뿐 실질적으로 군(郡)과 차이가 없었다.
 
== 유럽의 봉건 제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