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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태(鄭泰, ?~?)는 후한 말의 인물로 자는 공업(公業). 정혼의 형이며, 고조부 정중과 부친 정흥은 유명한 유학자이다. 작은 아들의 이름은 정무. [[순유]], [[화흠]]과 매우 친한 사이이다.
 
== 생애 ==
형양군 개봉현 출신으로 젊을 때부터 재략이 많아 영제 말기에 천하가 장차 혼란스러워질 것을 알고, 몰래 호걸 들과 친밀히 지냈다. 집안은 재산이 풍부해 밭은 사백경이나 있었으나 많은 식객을 거느리고 있어서 언제나 먹을 것이 부족해 명성은 산동에 알려졌다.
 
효렴으로 추천되어 삼공부에 추천되었으나 공거를 보내도 모두 거절했으며, 후에 영제가 죽었을 때 하진은 정치를 보좌받기 위해 그와 [[순유]], [[화흠]]을 등용해 정태를 상서시랑으로 삼으면서 봉거도위의 관직을 더했다. [[십상시]]와 권력을 다투는 [[하진]]이 모든 군벌들을 수도로 징발해서 환관들을 주살하려고 하자 정태는 [[동탁]]만은 불러들이지 말라고 말한다.
 
{{인용문2|"동탁은 강력 잔인한 자로 도의를 가벼이 여기고, 탐욕에 넘쳐 의기 따위는 알지 못하는 자입니다. 혹여 그에게 조정의 일에 간여케 하면 그 마음 먹은 대로 굴어 조정을 위험에 빠뜨리게 될 것입니다. 명공의 위신, 덕의를 가지고 아형들을 모아 의지를 굳혀 죄인들을 주살해 배척하시는 것이 옳습니다. 실로 동탁을 들어 후원자로 삼으려 할 것도 없습니다. 그렇게 계획을 서둘다가 일이 어그러지는 것은 먼 옛날의 견본을 찾으려 할 것도 없습니다."
 
}}
 
그러나 하진이 이 말을 받아들이지 않고 동탁도 수도로 불러들이려 하자 순유에게 "하진은 섬길 가치가 없다."라고 말하며 미련없이 관직을 떠나고 낙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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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탁의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이상만을 바라보고 사는 유학자의 헛소리인데, 동탁이 그러면 병사들은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이냐고 묻는다. 정태는 산동으로 대군을 투입할 필요 없이 자신에게 원소를 토벌할 책임을 맡겨 달라면서 다음과 같이 열 가지 이유를 대면서 동탁을 설득하는데, 그 내용은 반동탁군을 깎아내리고 동탁을 치켜세우는 문구이다.
 
{{인용문2|"지금 산동에서는 군벌들이 함께 모여 주와 군은 서로 연합하고, 사람들은 서로 연계하고 있어 강성하지 않다고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광무제 이래로 중국은 큰 전쟁이 없어 백성들은 안일함에 젖어 전쟁의 나날을 잊고 산 지 오래입니다. 공자 말씀에 "사람들에게 싸움을 가르치지 않으면 그것은 사람을 버리는 것이다"라고 했으니 혹여 산동군이 숫자가 많다고 해도 이들이 큰 위협이 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이것이 그 이유의 하나입니다.
 
명공은 서방의 주(양주)에서 나오셨고, 젊어서 나라의 장수가 되셨으니 평시에는 군사 조련을 행해 수없이 전장에 나서 그 명성이 당세에 널리 퍼져 사람들은 명공을 두려워하고 복종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두번째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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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에 연, 조, 제, 양 등의 국가들이 약소한 나라가 아니었음에도 결국에는 모두 진나라에게 멸망당했고, 오초칠국의 병력의 수효가 적은 것은 아니었지만 형양에서 패배했습니다. 게다가 지금 덕정이 혁혁히 빛나고 조정의 중신들이 어진데, 정현과 병원이 어찌 산동의 반란에 찬성할 것이며, 반란을 일으켜 도적과 오래도록 함께 하겠습니까? 불가능한 일입니다. 이게 열번째 입니다.
 
만약에 제가 이야기한 열 가지 이유 가운데 조금이나마 이치에 닿아 채용할 만한 부분이 있다면 군사를 새로 모집해 천하를 놀라게 하거나, 걱정과 병역을 찌든 백성들을 서로 모여 위법한 행동을 하게 하거나, 덕을 버리고 세력에 의존해 위광의 두터움을 가벼이 내는 행동은 마시기 바랍니다."
 
}}
 
자신에게 반대할 것이라고 예상했던 정태가 이렇게까지 찬동하자 동탁은 감격하면서 정태를 장군으로 삼아 반동탁 연맹군에 대항하게 하는데, 옆에 있던 [[가후]]가 "사실 정태는 동탁의 환심을 사서 자기가 병력을 운용해보겠다며 나서는 척 하면서 실제로는 동탁이 임무를 맡기면 오히려 원소와 합세할 것이라 조언했다.
 
{{인용문2|"정태의 지혜는 보통 사람 이상이라 결탁해 산동과 음모를 꾀하고 있습니다. 지금 그에게 병마를 맡기면 그 무리에게 가세하려 할 것입니다. 결국에는 명공의 우환거리가 될 것입니다."
}}
 
그 말에 정신이 든 동탁은 정태를 장군으로 임명한 것을 취소하고 몰수하고 의랑<ref>議郞: 하는 일은 황제의 질문에 답변하는 것 밖에 없는 벼슬이다. 황제가 없는 일도 찾아서 하는 성격을 가졌다면 매우 바쁜 직책이 될 수도 있지만 [[후한 영제]]는 그런 인물이 아니기 때문에 무보직과 다름없었다.</ref>으로 임명하여 조정에 잡아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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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 동탁이 온갖 만행을 저지르고 장안으로 천도할 때 기근까지 발생하여 많은 사대부들이 죽자 정태는 개인 재산을 풀어 날마다 빈객들을 모아 구조해 많은 사람을 구한다. 또한 하옹과 순유, 오경, 충집과 더불어 계획해 함께 동탁을 주살하려 했으나 사건이 누설되어 하옹 등이 붙잡혔다. 이때 정태는 탈출해 무한에서 동쪽으로 도주해서 원술에게 갔는데, 원술은 정태의 의탁을 기꺼이 받아들였고 원술이 정태를 양주자사에 제수하려 했지만 정태는 관직에 오르기 전에 도중에 병에 걸려 죽으니 당시 41세였다.<ref>원술은 후에 정태의 동생 정혼을 회유하려고 했지만 정혼은 원술이 잘 될 것 같지 않다고 판단해 도망친다.
 
== 평가 ==
정태야말로 천재 지략가라는 말이 어울리는 뛰어난 지략, 국가에 충성하는 충의지사, 백성들을 아낄 줄 아는 대인지사(大仁之士)의 모습들을 두루갖춘 명신(名臣)이었다. 시대를 잘못만났으나 이에 굴하지 않고 어떻게든 자신의 능력으로 후한을 안정시키려 하는 모습이 [[손견]]과 흡사한 인물로 손견이 무예로서 후한을 안정시키려 노력했다면 정태는 지략으로 후한을 안정시키려 노력했다. 또한 자신도 쫓기는 입장임에도 불구하고 굶어죽어가는 사람들까지 챙겨서 도와주는 면모를 보여 정태는 그야말로 성인군자라는 단어가 매우 잘 어울리는 인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