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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년]]에 태자에 책봉되었으나, 나이가 어려서 숙부 해색주(解色朱, [[고구려 민중왕|민중왕]])가 왕위에 올랐고, [[48년]]에 민중왕이 죽자 왕위에 올랐다. 《[[삼국사기]]》의 기록에 따르면 모본왕은 성격이 포악하고 국사를 살피지 못해 백성들이 원망했다고 한다.
 
[[49년]]에 장수를 보내 [[후한]]의 우북평(右北平), 어양(漁陽), 상곡(上谷), 태원(太原)을 습격하였다. 이에 후한의 요동 태수 [[제융]](祭肜)이 화친을 청해와 화친하였다.<ref>이 습격 기사를 오환 또는 선비를 고구려로 착각하여 잘못 기록한 것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이병도, 《삼국사기》, 을유문화사</ref><ref>후한서 동이열전에는 고구려와 선비가 연합하여 우북평, 어양, 상곡, 태원 등을 습격하였다고 기록되어 있으므로 고구려를 선비나 오환과 착각했을 가능성은 낮다.</ref> 이 해에는 폭풍이 불고 서리와 우박이 내리는 등 악천후가 있어 음력 8월에 사신을 보내 굶주린 백성들을 진휼하였다.
 
[[51년]]에는 기록하기를 “왕이 날로 포악해져 앉을 때는 사람을 깔고 앉고 누울 때는 사람을 베개로 베어 사람이 혹시 움직이면 용서없이 죽였으며, 신하 중에서 간하는 자가 있으면 활을 쏘았다.”고 하였다. 이에 [[53년]]에 신하 [[두로]](杜魯)가 쿠데타를 일으켜 처형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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