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카사노미야 다카히토 친왕"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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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이 미국을 공격하여 [[태평양 전쟁]]을 일으킨 뒤인 [[1943년]]부터 [[1944년]]까지 [[난징 시|난징]]에 있던 [[지나 파견군]] 총사령부에서 근무했다. 귀국 이후에는 [[쓰노다 도모시게]] 소위 등과 [[도조 내각]]의 타도를 공모했으나, 쓰노다 등이 [[도조 히데키]]를 암살하고 수백 명의 주전파를 숙청해야 한다는 강경한 주장을 하여 다카히토와 의견 차이가 생겼고, 다카히토는 쓰노다를 헌병대에 신고하여 쿠데타 계획을 스스로 뒤엎었다. 그러나 사건에 연루되어 있었다는 이유로 육군기갑본부 쪽으로 좌천되었다. 전쟁이 끝난 뒤에는 항공 총군 교육참모 겸 육군 소좌직을 지냈다.
 
[[1947년]] [[도쿄 대학]] 문학부에 들어가, 역사학을 전공했다. [[1955년]] [[도쿄 여자 대학]]에 교수로 나가 강의 활동을 시작했고, [[아오야마 학원가쿠인 대학]], [[덴리 대학]], [[다쿠쇼쿠 대학]] 등에서도 교수로 지냈으며, 일본 오리엔트 학회의 회장을 지냈다. [[1994년]] 6월에는 [[런던 대학]] 동양·아프리카 연구학원의 명예회원에 위촉되었다.
 
[[1998년]]에는 [[장쩌민]] [[중화인민공화국]] 주석을 만나 [[난징 대학살]]을 비롯한 일본의 중국 침략 행위에 대하여 사과의 뜻을 비쳤고<ref>[http://news.donga.com/3//20060811/8338842/1 히로히토日王동생 “中침략 사죄”], 동아일보, 2006년 8월 11일.</ref>, [[2004년]]에는 라디오 방송에 출연하여 [[간토 대지진]] 때 일어난 재일 조선인 학살 사건([[간토 대지진 조선인 학살 사건]])에 대하여 "잊어서는 안 되는 사실로 재평가가 필요하다"고 발언했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38&aid=0000229466 "관동 대지진 조선인 학살 잊지 말아야"], 한국일보, 2004년 4월 16일.</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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