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도성: 두 판 사이의 차이

내용 삭제됨 내용 추가됨
편집 요약 없음
편집 요약 없음
17번째 줄:
'''[[에도 시대]]'''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입성할 당시에는 수수한 성이었고, 오타 도칸이 축성한 성 그대로 남아 있어 비교적 소규모의 성이었다. 그러나, [[1603년]] 이에야스가 에도 막부를 열자, 에도 성은 증축되어, 혼마루, 니노마루, 산노마루([[고쿄 히가시 교엔|동쪽 정원]])에 더해, 니시노마루(황실의 거처), 니시노마루시타([[고쿄 가이엔|바깥 정원]]), 후키아게([[후키아게 교엔|후키아게 정원]]), 기타노마루,([[기타노마루 공원]])의 주위 16km에 이르는 구역을 본성으로 했고, 현재 [[지요다 구]]와 [[미나토 구 (도쿄 도)|미나토 구]],[[신주쿠 구]]의 경계에 일부 바깥 해자와 [[스루가다이]]<ref>도쿄 도 지요다 구에 있는 대지</ref>를 파서 [[간다 강]] 소마에 해자로 삼은 대규모의 성으로 발전하였다. 공사에는 전국의 [[다이묘]]가 동원되어 성이 완성되었을 때는 이에야스의 손자 [[도쿠가와 이에미쓰]]가 쇼군으로 있을 때인 [[1636년]]이다. 이 후, 200년 이상을 에도 막부의 중추로 기능하고 많은 정치적 사건의 무대가 되었다.
 
혼마루의 [[덴슈|천수]]는 [[1607년]], [[1623년]], [[1638년]]으로 세 번 지어졌다. 현재 정확한 모습을 알수 있는 1638년에 지어진 천수는 5층6계의 승탑형이지만, [[1657년]] [[메이레키 대화재]]로 소실되었다. 즉시 재건계획을 세워 [[마에다 쓰나노리]]에의해 천수대가 축성되었지만,「천수는 [[오다 노부나가]]가 기후 성에 축성한 것이 시발점이었고, 성을 지키는 데에는 쓸모가 없다.」라는 반대 의견과 에도 재건을 우선시 하는 방침으로 철회되었다. 그 후에도, 에도 성은 몇 번의 화재로 피해를 입었다. 혼마루는 [[1863년]] 화재로 소실된 그대로 재건되지 않은 채, 니시노마루에서 모든 정무를 보아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