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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전 이후 북연은 북위의 압박을 받아 나라가 위태로운 상황이 되자 풍홍은 [[435년]]에 고구려에 사신을 보내 만약의 사태가 벌어지면 고구려로 망명하여 재기를 도모할 것을 요청하였다. 결국 풍홍이 예측한 대로 [[436년]]에 북위가 침공하여 백랑성(白狼城)이 함락되고 수도인 용성마저 함락될 위기에 처하자 풍홍은 고구려의 장수왕에게 망명을 요청 하였으며 이에 장수왕은 2만의 병력을 보내 북위군보다 먼저 용성에 도착해 풍홍과 그 백성들을 구출해갔다. 고구려의 도움으로 가까스로 목숨을 부지한 풍홍은 요동성에 머물며 재기를 다짐했다. 그런데 자신의 처지를 생각도 하지 않고 오만불손한 태도로 장수왕을 함부로 대하였다. 이에 분노한 장수왕은 풍홍의 처제와 자식을 인질로 잡고 풍홍은 고구려의 외곽지역인 북풍으로 강제 이송시킨다. 그러자 풍홍은 남조의 [[송 (남조)|유송]]에 망명요청을 했다. 이에 응한 송나라가 사신 왕백구를 고구려로 보내 풍홍을 망명시킬 것을 요청하자 장수왕은 풍홍을 위험인물로 간주하여 [[438년]]에 그 가족들과 함께 모두 살해했다. 일부 풍씨 일족들이 살아남아서 북위에 귀순했는데 그중에서 유명한 인물이 북연의 재상이었던 풍소불(馮素弗)이다. 지금의 [[랴오닝 성]] 북요시 서관영자에서 풍소불의 분묘(墳墓)가 발굴되었으나 명문은 없다.
== 역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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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연 황제와 연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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