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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종'''(光宗, [[925년]] ~ [[975년]] [[7월 4일]] ([[음력 5월 23일]]<ref>《고려사》세가2</ref>))은 [[고려]] 제4대 왕 (재위: [[949년]]~[[975년]])이다. [[휘]]는 소(昭), [[자 (이름)|자]]는 일화(日華), [[묘호]]는 광종(光宗), [[시호]]는 '''홍도선열평세숙헌의효강혜대성대왕'''(弘道宣烈平世肅憲懿孝康惠大成大王)이다. [[고려 태조|태조]]의 넷째 아들, [[신명순성왕후]]의 셋째 아들로서 요절한 왕태, [[고려 정종 (3대)|정종]](定宗)의 동생이다. 비는 [[대목왕후]] 황보씨(大穆王后 皇甫氏)로 태조와 [[신정왕후 (고려)|신정왕후 황보씨]]의 딸로 이복누이이며, 후궁인 [[경화궁부인|경화궁부인 임씨]](慶和宮夫人)는 배다른 형 [[고려 혜종|혜종]]의 딸이다.
 
[[949년]] [[3월]] 동복 형 정종의 선위를 받아 즉위하였다. [[중국]]의 연호를 사용하지 않고 [[949년]] [[광덕]](光德), [[960년]] [[준풍]](峻豊<ref>광덕은 949~951년, [[준풍]]은 960~963년의 연호이다.</ref>) 등의 독자적인 연호를 사용하였고, [[중국]] [[후주]]로부터 [[과거제도]]를 받아들여 처음 과거를 실시하였다. 노비안검법으로 부당하게 노비가 된 양민들을 석방하였고, 민생안정과 백성구휼에 힘을 썼다.
[[960년]]에는 [[중국]]에 사신을 보내 불경을 구해오게 했는데, 그해 [[오월]]의 제5대 황제 [[전홍숙|전숙]](錢瞞, 錢弘俶)이 사신을 보내어 《천태론소》(天台論疏)의 교전과 그 밖의 불전을 보내왔다.
 
후주가 몰락하고 송나라가 일어나 패권을 다투기 시작, 광종은 이 같은 중국의 혼란이 계속되자 후주의 연호를 버리고 다시 [[960년]](광종 11년)부터 '준풍'이라는 독자적인 연호를 사용한다.<ref name="pare199683"/> 또한 개경을 황제의 수도인 황도(皇都)로 개칭하여 황제의황제(皇帝)의 면모를 갖췄다.<ref name="pare199683"/> 그는 자신을 중국의 황제와 같은황제의 지위에 올려놓음으로써 스스로가 절대 권력자임을 신하들에게 주입시키려 했다.<ref name="pare199695"/> 이에 따라 호족들은 광종의 절대 권력에 도전하게 되었고, 광종은 무자비한 숙청작업을 통해 공포정치를 실시함으로써 자신에게 도전하는 모든 권력과 대결해 나간다.<ref name="pare199695"/>
 
그러다가 [[송나라]]가 후주를 무너트린 후 안정을 찾고 국가의 기틀을 확립하자 [[963년]] [[12월]]부터 송나라의 연호를 사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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