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피누스 2세 (아키텐)"의 두 판 사이의 차이

 
=== 체포와 투옥, 최후 ===
[[852년]] [[9월]] 피핀 2세는 결국 [[가스코뉴]]의 [[백작]] [[산초 2세 산시온]]에게 체포되어 동생 샤를과 함께 [[서프랑크 왕국|서프랑크]]의 [[카를 2세 (서프랑크)|대머리 카를 2세]]에게 넘겨졌다. 피핀2세는 [[수아송]]의 세인트 메다르(Saint Médard) 수도원에 감금되었다. 피핀 2세를 체포한 공로로 [[카를 2세]]는 [[가스코뉴]]의 [[백작]] [[산초 2세 산시온]]을 [[공작]]으로 승격시켰다. 이때 [[루트비히 2세 (동프랑크)|독일인 루트비히]]와 [[카를 2세 (서프랑크)|대머리 카를 2세]]와 전쟁을 벌였고, [[루트비히 3세 (동프랑크)|청년 루트비히]]를 보내 대머리 [[카를 2세 (서프랑크)|카를 2세]]와 교전하였다. 전쟁은 [[855년]] [[루트비히 3세 (동프랑크)|청년 루트비히]]가 [[리모]](Limoges) 지역 일대를 되찾을 때까지 계속되었다. 이때 독일인 루트비히는 자신의 아들 [[루트비히 3세 (동프랑크)|청년 루트비히]]를 아키텐으로 보내 피핀 2세와 샤를을 탈출시키게 했다. [[루트비히 3세 (동프랑크)|청년 루트비히]]는 피핀 2세의 탈출 소식을 확인한 후에 [[바이에른]]으로 퇴각하였다.
 
[[854년]] 형제 샤를과 함께 세인트 메다르 수도원에서 탈출에 성공한 피핀 2세는 대머리 [[카를 2세]]에 맞서 싸울 [[바이킹 족]] [[용병]]을 고용하였다. 피핀은 자신의 옛 영토에 [[바이킹 족]]의 정착을 주도했다. 대머리 [[카를 2세]]의 아들 [[샤를 3세 (아키텐)|유아왕 샤를]]은 군사를 이끌고 [[푸아티에]] 지역을 공격하였다. [[855년]] [[10월]] [[라모]]에서 열린 [[아키텐]]의 귀족회의에서 [[샤를 3세 (아키텐)|유아왕 샤를]]을 아키텐 왕으로 선정하였다. 그러나 피핀 2세는 자신의 옛 영토인 [[루아르 계곡]]과 [[푸아티에]], [[앙굴렘]], [[페리]], [[리모]], [[클레르몽]], [[부르주]] 등을 차례로 회복하였고, 대머리 [[카를 2세]]는 피핀 2세를 진압하려고 힘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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