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피누스 2세 (아키텐)"의 두 판 사이의 차이

[[841년]]까지 [[아키텐]]은 총독의 통치하에 있었고, 아키텐의 총독은 피핀 2세의 큰아버지인 [[로타르 1세]]였다. 조부 [[루트비히 1세 (프랑크)|경건왕 루트비히 1세]]가 사망하면서 [[카를 2세 (서프랑크)|대머리 카를]]은 다시 [[아키텐]]을 요구했고, [[841년]] 피핀 2세는 다시 [[카를 2세 (서프랑크)|대머리 카를]]와 퐁트누아 앙 퓌세(Fontenoy-en-Puisay)에서 맞붙었다. 이때 로타르 1세는 피핀을 지원하였다. [[841년]] 피핀 2세와 [[대머리]] [[카를 2세 (서프랑크)|카를 2세]]의 [[퐁트누아 전투]]에 큰아버지 [[로타르 1세]]가 지원하였으나 피핀 2세가 크게 패배하였다. [[로타르 1세]]와 [[루트비히 2세 (동프랑크)|독일인 루트비히]]가 피핀을 지원했고, [[퐁트누아 전투]]에서 결국 대머리 [[카를 2세]]를 꺾고, 피핀 2세는 정식으로 [[아키텐 왕국]]을 통치할 수 있었다. 피핀에게 [[아키텐]]이 반환되자 대머리 [[카를]]은 반발, 이후에도 전쟁을 계속하였다. 이후 피핀 2세의 실질적 통치는 [[848년]] 또는 [[852년]]까지였다.
 
[[841년]]부터 [[843년]] [[카를 2세 (서프랑크)|카를 2세]]와 [[루트비히 2세 (동프랑크)|독일인 루트비히]]가 손잡고 [[로타르 1세]]를 상대로 전쟁을 벌이자, 피핀 2세는 [[로타르 2세]]의 휘하 장수의 한 사람으로 활약하였다.(→[[시민 전쟁]]) 이 전쟁에서 [[루트비히 2세 (동프랑크)|독일인 루트비히]]의 군사가 [[로타르 1세]]의 군대를 꺾었는데, 이때 대머리 카를은 [[가스코뉴]]에 있는 피핀에게 보냈다. 피핀 2세는 [[카를 2세]]의 사자를 보자마자 구타하였다. 피핀 2세는 다시 [[아키텐]]으로 후퇴하여 [[카를 2세]]를 상대로 전쟁을 계속하였다. 피핀은 [[아키텐]]으로 돌아가 [[카를 2세]]가 대리 통치자로 파견한 [[툴루즈]] [[백작]] [[베른하르트 드 셉티메니아]](Bernhart de Settimania)를 물러나게 했다.
 
[[842년]] 또는 [[843년]]에 피핀 2세는 [[서프랑크]]를 침공, [[툴루즈]] 지역을 차지했다. 그러나 [[툴루즈]]와 [[라우구에]](Rouergue)의 [[백작]] [[툴루즈의 프레도론]](Frédolon)가 그를 배신하여 카를의 편에 가담하였다. [[844년]] 피핀 2세는 [[바이킹 족]] 모험가 [[야를 오스카]]에게 도움을 청했다. 피핀은 야를 오스카에게 서프랑크 왕국의 땅을 약탈해서 정복하면 그 지역에 정착지를 주겠다고 하였다. 피핀과 [[야를 오스카]]는 [[서프랑크 왕국]]의 [[가론]]과 [[툴루즈]] 일대를 약탈했다. [[843년]] 피핀 2세는 [[카를 2세]]와 사로나 섬(Saona)에서 평화 조약을 체결하였다. 그해에 [[시민 전쟁]]이 종료되고, [[로타르 1세]], 독일인 루트비히, 대머리 카를이 [[프랑크 왕국]]의 영토분할을 할 때, [[서프랑크 왕국]]의 [[카를 2세]]에게는 [[아키텐]], [[툴루즈]]와 [[셉티메니아]] 등도 분배되었다. [[844년]] 피핀 2세는 [[툴루즈]]의 카운티들과 툴루즈 시내를 공격하여 포위했으며, 셉티메니아의 베른하르트 등을 체포했다. [[845년]] [[6월 5일]] 피핀은 [[생 브누아-쉬르-루아르]]에서 [[카를 2세]]와 협정하였다. [[아키텐]] 지역의 [[푸아투]], 상통주(Saintonge), 앙구모아(Angoumois)를 [[카를 2세]]에게 할양하는 조건으로 단기간 휴전하였다.
 
[[845년]] [[보르도]] [[공작]] [[세귄 2세 (보르도)|세귄]]이 피핀에게로 망명해왔다. 피핀은 세귄에게 줄 정착지로 [[바스코눔]](Wasconum) [[공작]]령을 신설하고 공작에 임명했다. 동시에 피핀 2세는 [[가스코뉴]]의 [[백작]] [[산초 2세 산시온]]에게 도움을 청했다. [[산초 2세 산시온]]은 그의 아버지 [[피핀 1세 (아키텐)|피핀 1세]]가 자신의 아버지 루트비히 경건왕을 상대로 전쟁할 때 도운 인물이었다. 한편 [[보르도]]는 [[아키텐]]의 가장 큰 도시로, [[보르도]] 지역이 대머리 [[카를 2세]]의 수중에 들어가자 불만을 품은 시민들의 도움으로 [[보르도]]는 바로 [[847년]] [[야를 오스카]]의 [[바이킹]] 군대에 의해 회복되었다. 시민들 중에는 [[유대인]] 및 피핀 2세의 지지파 게릴라들도 있었다. 한편 피핀 2세는 이교도 해적과도 손을 잡았다. 한편 피핀은 [[과음]]과 다소 나태한 생활에 빠졌고, [[848년]] 무렵에 이르러 [[아키텐]] 귀족들 중 피핀에 대한 지지도는 줄어들었다. 동시에 그의 동생 [[아키텐의 샤를]]이 [[아키텐 왕국]]에 대한 권리를 주장하고 나섰다. 이후 1년 안에 [[아키텐]]의 귀족들 중 상당수는 피핀 2세에 대한 지지를 철회하였다.
 
[[851년]] [[카를 2세]]는 수아송에서 의회를 개최하고 피핀 2세의 해임을 선언했다. 그러나 [[아키텐]]의 귀족들은 카를 2세의 결정에 반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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