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대외 관계"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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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독립 전쟁을 도와주었던 [[프랑스 왕국]]은 [[프랑스 대혁명]]으로 전복(1789년)되었고 [[프랑스 총재정부]](1795-1799)가 들어선데 이어 미국에서는 [[연방주의자]]였던 [[존 애덤스]]는 [[1796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토마스 제퍼슨]]을 물리치고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XYZ 사건]](1797년)으로 양국은 관계가 악화되면서 양국 사이에 전쟁 조짐이 보였다. 연방주의자는 이 기회를 《[[외국인과 치안법]]》으로 [[알렉산더 해밀턴]]을 수장으로 한 대규모 군대를 조성하고, 프랑스의 침입에 대비하면서 공화당을 침묵시키려는 시도로 이용했다. 그러나 애덤스가 1798년 ‘[[유사전쟁]]’을 끝내게 되는 성공적인 평화사절단을 파견하는데 성공하자, 연방주의자들은 분열되어버렸다.<ref name="in JSTOR">Marshall Smelser, "The Jacobin Phrenzy: The Menace of Monarchy, Plutocracy, and Anglophilia, 1789-1798," ''Review of Politics'' (1959) 21#1 pp 239-258 [http://www.jstor.org/stable/1405347 in JSTOR]</ref><ref>David McCullough, ''John Adams'' (2008) ch 10</ref>
 
미국과 프랑스 간의 갈등을 미연에 방지하려는 프랑스([[나폴레옹 보나파르트]])의 정치적인 계산과 미시시피 강 유역의 상업을 장악하고 영토를 넓히려는 미국([[토머스 제퍼슨]] 대통령)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져 미국은 프랑스로부터 [[프랑스령 루이지애나]]과 [[뉴올리언스]] 구입하였다.([[루이지애나 매입]], 1803년) 이로서 [[미국]]의 영토는 두 배로 증가하였고 미국은 점점 하나의 국가로서 모습을 갖추어 나갔고, 프랑스의 미국 식민지배는 끝나게 되었다.
 
[[나폴레옹 보나파르트]]가 이끄는 [[프랑스]]와 [[영국]]은 전쟁 상태에 들어갔다(1803년). 미국은 유럽에 농산물 수출을 통해 벌어들이는 외화에 의존하고 있던 상태였다. 미국은 중립적 태도를 취했고, 양 진영 및 양 진영이 가지고 있는 카리브 해안의 식민지에 농산물과 원자재를 수출했다. 양국 모두 이익이 될 때는 무역을 허용했고, 불이익이 될 때는 무역을 거절했다. 1805년, [[트라팔가 해전]]에서 프랑스가 패하자, 영국은 프랑스의 해상 봉쇄를 실시했다. 또한 영국은 미국 무역 정책에 대해서도 [[느슨한 해상 봉쇄]]를 실시하고 보복을 가해왔다. 미국 이외의 국가에서 농산물 수입이 쉽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미국 의회와 제퍼슨 대통령은 영국의 해상 봉쇄 해제를 노리고, 1807년에 외국과의 무역을 중단했다. 그러나 영국은 다른 나라로 농산물 수입선을 전환했다. 미국의 농산물 수출은 큰 타격을 받았다. 그래서 1812년, 영국이 [[미시시피 강]] 서부와 캐나다 원주민를 지원하는 것을 구실로, 남부와 서부 출신 의원을 중심으로 영국에 선전 포고를 하게 되었고, 남북 전쟁이 종전 후 29년만에 다시 '''[[미영 전쟁]]'''(또는 '''1812년 전쟁''')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