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엽 (승려): 두 판 사이의 차이

내용 삭제됨 내용 추가됨
편집 요약 없음
잔글편집 요약 없음
24번째 줄:
[[일본]] 유학시기부터 화가 [[나혜석]] 등과 함께 [[자유 연애론]]과 [[신정조론]]을 외치며 개화기 신여성운동을 주도했다.<ref name="seonmun">[http://news.donga.com/3/all/20010129/7640914/1 <nowiki>[</nowiki>출판<nowiki>]</nowiki> 일엽스님 禪文集 다시 본다…30주기 맞아 재발간] 동아일보 2001.01.29</ref> [[일본]] 유학 중 문인으로 데뷔하여 시와 소설, 칼럼 등을 발표하였으며 귀국 후 [[1920년]]에는 [[폐허]] 지의 동인으로 참여하고, [[1920년]]에는 [[신여자]]지를 직접 창간하였다. 언론 활동으로는 [[1921년]]과 [[1931년]] [[매일신보]]의 기자로 있었고, [[동아일보]]의 기자로도 있었으며, [[동아일보]], [[조선일보]], [[조선문단]], [[매일신보]] 등에 칼럼과 논설을 기고하였고, [[1925년]]부터 3년간 [[아현보통학교]]의 교사로도 근무하였다.
 
[[나혜석]], [[김명순]] 등과 함께 여성 해방론과 [[자유 연애]]론을 주장하고, 여성의 의식 계몽을 주장하는 글과 강연, 자유 연애 활동을 하였다. 이화학당 시절부터 종교에 대한 회의를 해오다, 1927년 불교잡지 불교의 문예란에 기고하면서 불교에 본격적으로 관심을 갖게 된다. 1930년대 초 서울의 선학원 등에서 참선을 하였으며, [[1933년]] 만공선사 하에서 출가, [[충남]] [[예산]] [[수덕사]]에서 1971년 입적한다. 출가시 [[만공선사]]가 선수행을 위해 읽고 쓰는 거을것을 중단하라는 말을 따라, 20여년 집필 활동을 중단하다 1950년대 후반에 다시 글을 발표하기 시작한다. [[1960년]]에 <어느 수도인의 회상>을 발표하고, 1962년 <청춘을 불사르고>를 발표하며, 1964년에 마지막 저서 <행복과 불행의 갈피에서>를 발표한다. [[불명]](佛名)은 하엽(荷葉), 도호(道號)는 백련도엽(白蓮道葉), 하엽당(荷葉堂), 본명은 김원주(金元周), 다른 이름은 원주(源珠)이다.
 
== 생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