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조 시대: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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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대 강남이 크게 개발되어, 이후 수나라, 당나라 시대에 강남은 중국 전체의 경제 기반이 되었다. 남조는 정치적 혼란과는 대조적으로 문화와 불교 등이 융성하여 육조 문화라 불리는 귀족 문화가 번영하여 [[도연명]], [[왕희지]] 등이 활약했다.
 
화북에서는 선비족 [[탁발씨|탁발부]]가 건국한 [[북위 (북조)|북위]](北魏)가 [[오호십육국시대]]의 혼란을 수습하고, 북방 유목민의 부족제을부족제를 해체하고 귀족제에 의거한 중국적인 국가로 탈피했다.
 
북위는 [[육진의 난]](六鎭之亂)을 거치면서, [[534년]]에 [[동위 (북조)|동위]](東魏), [[서위 (북조)|서위]](西魏)로 분열하였다. 동위는 [[550년]] [[북제]](北齊)로 정권이 바뀌고, 서위는 [[556년]]에 [[북주]](北周)가 대신했다. [[577년]] 북주는 북제를 멸망시켜 화북을 통일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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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 고양의 황태자를 살해하고 동생 고연(高演; [[효소제]](孝昭帝))이 즉위했고, 고연 사후, 고연의 황태자를 살해한 고담 [[무성제]](武成帝)가 뒤를 이었다. 북제의 군주는 주벽과 기행이 많아 정치는 매우 혼란스러웠다. 다만 역대 군주는 주벽과 기행이 있는 동시에 군사적 재능이 풍부하여 북주에 대한 군사 행동에는 호각 이상을 뛰어넘어 언제나 북주를 패퇴시켰다.
 
무성제는 즉위 후 얼마 안 가 아들 고위(高緯; [[후주]](後主))에게 제위를 양위하고, 상황(上皇)으로서 정무을 살폈으나 그 시대에는 개인적 친분을 가진 총신들이 정치를 좌지우지하였다. 특히 후주는 주위의 참언(讒言)을 믿고 북제의 군사력을 지탱하던 [[곡율광]](斛律光)과 [[난릉왕]](蘭陵王) 두 사람을 살해하여 군사력의 약체화를 불렀다. 북주는 이 사건을 호기로 보고 북제을북제를 침공해 후주를 사로잡은 뒤 얼마 안 가 그에게 자살을 명령했다. 북제는 [[577년]]에 멸망했다.
 
* [[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