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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크 르네 에베르'''(Jacques René Hébert, [[1757년]] [[11월 15일]] - [[1794년]] [[3월 24일]])는 근대 [[프랑스 왕국]]과 [[프랑스 제1공화국]] 기간의 정치인, 언론인, 작가이다. [[프랑스 혁명]] 때 [[자코뱅파]]의 상퀼로트파벌의 대변인이자 나중에 상퀼로트 파벌이 에베르 파벌과 당통 파벌로 갈라섰을 때는, 강경파인 에베르 파벌의 지도자였다. [[프랑스 대혁명]] 당시 [[자코뱅당]]의 강경파의 인사 중의 한 사람이었다.
 
[[1790년]] 《페르 뒤셴》(Père Duchesne)이라는 잡지를 창간한다. 이 잡지를 통해 비어를 이용하여 우파를 격렬하게 공격했고 [[상 퀼로트]] 지도자로서 두각을 나타냈다. 그러나 무차별 처형을 원치 않으면서, 타협, 관용도 원치 않던 [[막시밀리앙 로베스피에르]]의 미움을 산데다가 반대파인 [[조르주 당통]]파벌의 집중공격 등을 받고 [[1794년]] [[3월 24일]] 처형당했다.
 
== 생애 ==
[[지롱드파]] 추방과 [[자코뱅파]]의 독재에 공헌하고 공포 정치의 유지와 [[기독교]]를 중지하고 “이성의 숭배”라고 칭해지는 합리주의적인 제전을 실행했다. 그러나 로베스피에르는 [[이신론]]의 형태였지만 신의 존재를 믿었고, 에베르는 성직자들 역시 기존 왕정과 봉건체제에서 종교, 도덕적 권위를 빙자해 민중을 약탈하는데 기여했다며 맞섰다.
 
[[1794년]] 같은 [[자코뱅파]] 파벌인 [[로베스피에르]] 파에 대한 봉기를 호소했지만 실패하고, 오히려 [[조르주 당통]] 계열의 집중공격을 받아 체포되어 자신의 [[상 퀼로트]] 간부 17명과 함께 혁명 재판소에 회부되어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졌다. 그의 체포의 이유는 “셔츠 절도죄”였다. 그가 죽기 이전에 이미 [[상 퀼로트]] 내에서 에베르는 이미 지지를 잃었지만, 그가 처형되면서 [[상 퀼로트]]는 로베스피에르에 대한 지지를 철회하고, 서서히 반대파가 집권한 뒤에 자멸해간다.
 
== 같이 보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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