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기병 박해: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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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신교인들의 탈출 ==
루이 14세의 개신교 탄압은 용기병의 박해를 거쳐 개신교 차별금지법인 [[낭트칙령]]을 무효화한 [[퐁텐블로 칙령]]에 이르러 절정에 달한다. 결국 이런 로마 가톨릭 교회의 박해를 피해 프랑스의 개신교인들은 프랑스를 떠나 이웃 네덜란드나[[네덜란드]]나 [[영국]], [[스위스]], 독일, 스칸디나비아, 러시아, 남아프리카, 북아메리카 등으로 탈출하여 프랑스 국력의 침체로 이어진다. 워렌 스코빌(Warren C. Scoville)의 연구에 따르면 1700년 당시 프랑스의 인구는 2000만명으로 그 중 개신교인이 150~200만명을 차지했는데 박해를 피해 탈출한 개신교인들은 대략 10%인 20만명에 달한다.
이중 네덜란드가 5~6만명의 개신교인을 받아들여 가장 많은 수를 차지했고 잉글랜드가[[잉글랜드]]가 4~5만명으로 그 뒤를 잇고 있다.그 다음으로 독일(2만5000~30000명), 스위스(2만2000) 아일랜드(10000명) 등이 뒤를 이었다.
이들 망명 개신교인들은 가톨릭이 다수를 차지하는 아일랜드나 루터파의루터교의 [[스칸디나비아]], 그리스 정교를정교회를 믿는 러시아 등에도 스며들면서 근대 유럽의 종교적 다양성을 만들어 내는데에도 기여하였다.
 
== 강제 개종에 대한 지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