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테렌 추방령: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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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리냐노의 중재와 임진왜란 ==
[[예수회]]의 동인도 순찰사인 [[알렉산드로알레산드로 발리냐노]](동인도 선교 총 책임자로 코엘료 신부를 일본 책임자로 임명한 사람)는 히데요시의 추방령이 어떻게든 무효가 되도록 분주하게 움직였다. 그는 1590년(덴쇼 18년), 귀국한 [[덴쇼 소년사절단]]과 함께 인도 총독의 대사 자격으로서 [[주라쿠 다이]]에서 히데요시와 회견했다. 발리냐노는 히데요시에게 황금장식을 붙인 매우 아름답고 훌륭한 밀라노산 백색 갑주 2벌, 모두 은으로 된 매우 훌륭한 장식이 붙은 커다란 검 두 자루, 진귀한 두자루의 총포,총포로 사용할 수 있는 투리사드(총포이지만 무엇인지 확실치 않음) 하나, 야전용 천막 한세트, 대단히 훌륭한 유화, 괘포 4매, 아라비아산 말 두마리 등을 선물로 바쳤다. 이에 보답으로 히데요시는 발리냐노에게 커다란 쟁반 두개를 주었는데 하나에는 은 100매, 다른 쟁반에는 솜을 둔 비단 옷 4벌이 들어있었다. 또 그를 수행한 예수회 사제들에게도 똑같이 은과 비단 옷을 선물했다.<ref>루이스 프로이스《임진왜란과 도요토미 히데요시》(국립진주박물관)P80</ref> 그 때의 히데요시는 자신의 힘을 과시하는 것 같은 코엘료의 태도에 격렬하게 비난하고 있었다. 이러한 히데요시의 분노를 억제하기 위해서 결국 발리냐노는 히데요시의 조선 출병([[임진왜란]])에 전면 협력을 할 수 밖에 없게 되었다. 실제로 조선에 출병한 그 대부분이 [[고니시 유키나가]]를 비롯한 크리스천 영주들이었다. <ref>윤재필《16세기 예수회의 일본선교 연구》(장로회신학대학교 세계선교대학원)</ref>
 
발리냐노의 히데요시 예방은 곧바로 일본땅에 파다하게 소문이 났고, 예수회 추방령은 이전의 상태로 되돌아 가는 것이라는 정보가 일본 전체에 퍼졌다. 이로 인해 각지의 천주교 신자들은 대단히 기뻐하여 이내 십자가를 세우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