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인리히 3세 (신성 로마 황제):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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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인리히 3세'''([[독일어]]: Heinrich III, [[1017년]] [[10월 29일]] ~ [[1056년]] [[10월 5일]])는 [[잘리어 왕가]]의 [[신성 로마 제국|신성로마제국 황제]]이다. [[콘라트 2세]]의 맏아들로 바이에른의 대공 (하인리히 6세)이자 슈바벤의 공작(하인리히 1세)였으며 [[1039년]]부터는 [[독일의 군주|독일왕]]이 되었고 [[1046년]] 신성로마제국의 황제가 되었다. [[1053년]] 귀족들의 반란에 직면한 하인리히는 그해 [[11월]] 아들 [[하인리히 4세]]를 독일 국왕으로 임명하여 왕권 안정을 꾀하였으나 하인리히 3세는 3년만에 사망하였다. 그는 황제 즉위 전 독일 국왕으로 대관식을 할 때, 프랑크족의 왕이 아닌 로마인의 왕 이라는 칭호를 처음 사용한 군주이기도 하다.
 
[[1028년]] 아버지에 의해 공동 독일 국왕으로 임명될 때 그는 로마인의 왕으로 임명되었다. 1056년 바이에른의 벨프, 하 로렌의 고드프리 3세 등의 귀족들이 반란을 일으키자 하인리히는 이들을 진압하고 아들 [[하인리히 3세]]를 독일 왕으로 임명하여 왕권의 안정을 꾀하였다. [[1026년]]에는 아버지 [[콘라트 2세]]에 의해 [[바이에른]] [[공작]]으로도 임명되었다. [[하인리히 2세]]가 독일 국왕이 되면서 [[바이에른]]을 넘겨받았던 [[하인리히 5세 (룩셈부르크)|룩셈부르크인 하인리히]]가 후계자가 없이 사망하자 아버지 [[콘라트 2세]]는 아들 하인리히 3세에게 [[바이에른]]도 물려주었다. 또한 아버지 황제 [[콘라트 2세]]를 괴롭히던 [[콘라트 2세 (케른텐)|케른텐의 콘라트 2세]]의 어린 아들 쿠노를 제치고 하인리히 3세가 [[케른텐]] [[공작]]위도 물려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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