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피누스 2세 (아키텐)"의 두 판 사이의 차이

 
==== 베르덩 조약 이후 ====
[[베르덩 조약]] 조문 중에 네번째 항목 피핀은 아키텐을 통솔하되 [[카를 2세]]를 주군으로 섬긴다는 조항에 대해 피핀은 반발했다. [[844년]] 피핀 2세는 [[툴루즈]]의 카운티들과 툴루즈 시내를 공격하여 포위했으며, 셉티메니아의 베른하르트 등을 체포했다. 그해 [[로타르 1세]]의 지원으로 [[카를 2세]]를 피레네 산맥에서 물리치고 아키텐의 주권을 확보하였다. [[845년]] [[6월 5일]] 피핀은 [[생 브누아-쉬르-루아르]]에서 [[카를 2세]]와 협정하였다. [[아키텐]] 지역의 [[푸아투]], 상통주(Saintonge), 앙구모아(Angoumois)를 [[카를 2세]]에게 할양하는 조건으로 단기간 휴전하였다. [[845년]]의 [[로타르 1세]]와 독일인 루트비히, 대머리 카를은 편지 서신에서 피핀 2세를 [[카를 2세]]의 가신으로 논정하였고, [[카를 2세]]는 [[845년]] [[생 브누아-쉬르-루아르]]에서 피핀 2세를 [[아키텐]]의 전 지역의 주지사로 임명한다고 발표했다. 피핀은 자신이 카를 2세의 가신으로 정한 것과, 왕에서 주지사로 격하된 지위를 승복하지 않았다.
 
[[845년]] [[보르도]] [[공작]] [[세귄 2세 (보르도)|세귄]]이 피핀에게로 망명해왔다. 피핀은 카를 2세의 휘하에 있던 세귄을 설득해 왔다. 피핀은 세귄에게 줄 정착지로 [[바스코눔]](Wasconum) [[공작]]령을 신설하고 공작에 임명했다. 그러나 세귄은 1년만인 [[846년]]에 사망한다. 동시에 피핀 2세는 [[가스코뉴]]의 [[백작]] [[산초 2세 산시온]]에게 도움을 청했다. [[산초 2세 산시온]]은 그의 아버지 [[피핀 1세 (아키텐)|피핀 1세]]가 자신의 아버지 루트비히 경건왕을 상대로 전쟁할 때 도운 인물이었다. 그러나 [[카를 2세]]의 충실한 지지자가 된 산초 2세는 그의 요청을 거절한다. 한편 [[보르도]]는 [[아키텐]]의 가장 큰 도시로, [[보르도]] 지역이 대머리 [[카를 2세]]의 수중에 들어가자 불만을 품은 시민들의 도움으로 [[보르도]]는 바로 [[847년]] [[야를 오스카]]의 [[바이킹]] 군대에 의해 탈환, 회복되었다. 시민들 중에는 [[유대인]] 및 피핀 2세의 지지파 게릴라들도 있었다. 한편 피핀 2세는 이교도 해적과도 손을 잡았다. 한편 피핀은 [[과음]]과 다소 나태한 생활에 빠졌고, [[848년]] 무렵에 이르러 [[아키텐]] 귀족들 중 피핀에 대한 지지도는 줄어들었다. [[848년]] [[6월 6일]] 서프랑크의 대머리 카를은 다시 자신이 아키텐 왕임을 선언하였다. 동시에 피핀 2세의 동생 [[아키텐의 샤를]]이 [[아키텐 왕국]]에 대한 권리를 주장하고 나섰다. [[아키텐의 샤를]]은 [[848년]] [[6월 6일]] [[오를레앙]]에서 자신이 [[아키텐]]의 [[국왕]]이라고 선언하였다. 이후 1년 안에 [[아키텐]]의 귀족들 중 상당수는 피핀 2세에 대한 지지를 철회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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