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경읍: 두 판 사이의 차이
내용 삭제됨 내용 추가됨
잔글 봇: 주석→각주 (위키백과:봇 편집 요청/2015년 2월#2015-02-16 J13의 요청) |
편집 요약 없음 |
||
31번째 줄:
[[File:Former Kanggyeong Labor Union Office.png|섬네일|1920년대 지어진 [[강경노동조합]] 사무소. 문화재청 등록문화재 323호]]
강경은 고려와 조선시대 [[충청도]] '''은진현(恩津縣)'''이었다. 강경은 [[금강 (강)|금강]]의 지류가 합류하여 [[서해]]로 연결되는 육로와 수로가 교차하는 평야 지대로서 [[백제]] 시대부터 많은 인구가 살고 있었다. [[대한제국]] 시기 수상 교통을 바탕으로 [[충청남도]] [[공주시|공주]], [[부여군|부여]]와 [[장항읍|장항]], [[군산시|군산]]
17세기 말엽에 열린 강경천 주변의 하시장이 개설되었고, 19세기 말에 들어와서 대시장으로 크게 부각되었다. 1870년에 옥녀봉 동쪽 기슭에 상시장이 설시되면서 2대포구, 3대시장으로 발전하였다. 강경포에 형성된 시장은 [[대구광역시|대구]], [[평양]]의 시장과 함께 '조선 3대 시장'으로 불리며 '1평양, 2강경, 3대구'라는 표현을 만들어냈다. 강경포구는 전국 3대 시장으로서 조선시대부터 4일과 9일장이 열렸다. 채운면의 제방 밑에는 조선시대에 세워진 무지개 모양 돌다리인 [[미내다리]]가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