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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헌왕후폐비 윤씨'''( 齊獻王后 廢妃 尹氏, [[1455년]] [[7월 15일]] ([[음력]] [[윤달|윤]] [[6월 1일]])<ref name="tae">폐비 윤씨 태실의 태지에 기록된 내용이다. 현재 폐비 윤씨 태실 등은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소장 중이며, 관련 내용을 국립중앙박물관의 전시 자료 [http://www.museum.go.kr/NMK_DATA/redfish/cutator/2011/cu-253/book.html] 에서 일부 확인 가능하다.</ref><ref name="ja">{{서적 인용
|저자= 조원교
|제목= 제253회 큐레이터와의 대화 〈폐비 윤씨의 태실·태항아리·태지〉
|날짜= 2011-7-20
|id=
}}</ref> ~ [[1482년]] [[8월 29일]] ([[음력 8월 16일]]))는 [[조선]]의 제9대 왕 [[조선 성종|성종]]의 계비이며 둘째부인이다. 성종과의 슬하에 두명의 아들을 두었으며 장남은 조선 10대 왕 [[조선 연산군|연산군]]이고 둘째 아들은 조졸하였다.남편인 '''성종'''이 사랑했던 여인이다.
 
[[1473년]] 성종의 후궁으로 간택되어 숙의(淑儀)에 지위에 있다가 [[공혜왕후]]가 죽자 왕비(王妃)로 책봉되었으나 남편 용안에 상처를 내어 폐비(廢妃)당했다. 그러나 [[연산군]] 즉위후 '''제헌왕후'''(齊獻王后)로 왕비(王妃)의 작호가 추존되었다.
 
[[봉상시]] 판사(奉常寺 判事) [[윤기견]](尹起畎, 또는 윤기무, 尹起畝)<ref>조선왕조실록에는 둘 모두 쓰였으나, 윤기무라는 이름이 비교적 적게 등장하므로 {{출처|윤기견의 오기로 보는 설이 유력하다.}} 한편 작가 [[신봉승]]은 자신이 집필한 드라마 《[[한명회 (드라마)|한명회]]》의 제94회에서, 윤기무는 윤기견의 아우로 슬하에 자식이 없었음이 함안 윤씨의 세보에 기록되어 있다고 하고, 이를 드라마를 통해서라도 바로 잡아야 한다고 밝히고 있다.</ref> 와 장흥부부인 신씨(長興府夫人 申氏)의 딸로 [[윤관]]의 11대손이다. 본관은 [[파평함안 윤씨|파평함안]](咸安)이다.
 
남편인 [[조선 성종|성종]]의 후궁들 문제로 시어머니인 [[소혜왕후|인수대비]]와 고부갈등으로 유명하며, 성종의 용안에 상처를 낸 일로 인해 폐비(廢妃)된 후 사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