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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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은 [[일제강점기]]에 총독부 청사를 지으면서 그 위치가 옮겨졌고, [[한국 전쟁]]때 목조부분이 불에 타 없어졌다<ref>광화문 복원(光化門 復元), 《[[동아일보]]》, [[1966년|1966.]][[2월 17일|2.17.]]</ref>. 이후 [[1968년]]에 석축은 그대로 두고 현판은 새로 만들고 상부는 [[철근 콘크리트]]를 사용하여 자리는 경복궁의 본래축이 아닌 총독부건물의 축에 맞춰 재건축하였으나<ref>광화문(光化門) 복원, 《경향신문》, [[1968년|1968.]][[12월 11일|12.11.]]</ref>, 건축 전부터 겉모양만 복원하는 것은 잘못되었다는 지적이 있었다.<ref>광화문 복원(光化門 復元)에 이론(異論), 《경향신문》, 1968.[[3월 20일|3.20.]]</ref>
 
경복궁의 정문인 광화문에서 중앙문은 임금의 전용출입문이다. 임금 행차 시에만 통과할 수 있었으며, 평소 신하들은 좌우 문으로 통과했다.
일본은 이러한 조선왕실의 위엄을 무시한 채 의도적으로 일반인들이 중앙문으로 주로 통과하게 하였고 중앙문에 일장기를 걸었다. <ref> [http://www.newscj.com/news/articleView.html?idxno=290844 <천지일보-일제침략사> ‘조선 왕권 무시’ 광화문 공진회 선전탑(1915년)] </ref>
 
[[1995년]]에 [[문민정부]]에서는 [[2003년]]부터 광화문을 철거하고 [[2009년]]까지 본래의 위치에서 석축 위의 목조 건물로 복원할 것을 발표하였다.<ref>광화문(光化門)도 제모습 찾는다, 《[[경향신문]]》, [[1995년|1995.]][[2월 28일|2.28.]]</re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