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파엘로 산치오: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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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새벽 (토론 | 기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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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네치아파적인 색채효과는 《율리우스 2세상(像)》을 위시하여 《베일을 쓴 여인》 《발타사르 카스티요네상》 《작은 의자의 성모》 등에 나타나 있다. 한편 건축에도 손을 대어 1514년 동향 선배인 B.L.브라만테의 뒤를 이어 성베드로대성당 건조에 관계하였고, 1514∼1517년 바티칸궁전의 스탄차델 인첸디오의 벽화장식에도 종사하였으며, 1515년부터는 고대유적 발굴의 감독관이 되었다. 《산시스토의 성모》(드레스덴)는 이 무렵의 걸작으로 아카데믹한 형식주의가 싹트고 있으며 《산타 체칠리아》(볼로냐)에서 그 경향이 더욱 뚜렷하다. 그 사이에도 키지예배당의 설계와 장식, 바티칸궁전의 로지에의 장식, 빌라마다마의 건축 등에 종사하였다. 그런데 많은 제자들을 거느린 화려한 궁정화가로서 일에 쫓기던 그의 예술은 종교개혁운동을 계기로 차차 쇠퇴하였고, 제자들과 함께 그린 파르네지나궁의 천장화 《프시케의 이야기》에서는 지난날의 감미로운 리듬은 사라지고 고대 조각의 영향을 조악하게 반영하여 채색한 조상(彫像)과 같은 느낌을 준다. 그러나 1518년의 《레오 10세의 초상》에서는 군상(群像)을 훌륭한 솜씨로 처리하여 뛰어난 초상화가임을 증명하였다. 만년에 심혈을 기울인 《그리스도의 변용》(바티칸)을 완성하지 못한 채 37세로 요절하였으나, 천상의 신비스러운 광휘와 지상의 소란을 대조시켜 S자형의 분방한 구도로 동적 표현을 시도한 이 작품은 이미 고전양식을 해체한 것으로 바로크양식의 싹이 엿보인다. 짧은 생애에 많은 걸작을 남긴 그가 미술사에 끼친 영향은 지대하며, 19세기 전반까지 고전적 규범으로 받들어졌다.
피카소를 중심으로 한 현대 초기 미술을 큐비즘(입체파)이라 하는데, 근대주의 미술의 표본적 그림이라 할 정도도 사실적인 극치가 잘 나타났다. 피카소의 그림이 다방면 입체감이 뛰어난데, 라파엘로 작품 역시 그에 못지않게 입체감이 살아 있고, 특히 원근감이 정말 놀라울 정도로 환상적이다.
2014년 초반부터 천지일보사에서 매주 라파엘로에 관해 단독 입수한 내용을 매주 기재하고 있다. (천지일보 http://www.newscj.com/news/articleList.html?sc_section_code=S1N18&sc_serial_code=SRN195&mn=10&view_type=sm)
[파일:PalazzoBranconioDellAquila.jpg|thumb|[[브란코니오 궁전]], 현재 파괴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