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도비쿠스 2세 게르마니쿠스: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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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5년]]과 [[872년]] 3명의 아들인 [[카를로만]], [[프랑크의 루트비히 3세|루트비히 청년왕]], 비만왕 [[카를 3세]]를 맏이에게는 바이에른과 [[케른텐]], 둘째 소 루트비히에게는 [[작센]], 셋째 카를에게는 각각 [[알레만니아]] 영토를 나누어 주었으나, 이 분할에 불만을 품은 아들들은 [[861년]]부터 [[873년]]에 계속해서 반란을 일으켰다.
 
루트비히는 [[모라비아]] 지방에 [[가톨릭]]을 전파하는 [[프랑크 족]] [[선교사]]들을 지원하고 이들의 안전한 선교를 주선하였으나, 모라비아를 흡수하는 데는 실패하였다. [[869년]] 군사를 보내 [[모라비아]]를 공략하여 [[870년]] 병합시켰다. 그러나 모라비아는 [[라디슬라프]] 공의 지휘하에 분리독립을 기도했고, [[라디슬라프]]가 죽자 [[모라비아]]의 반란은 진압한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871년]] [[슬라보미르]], 라디슬라프의 조카 [[스바토풀크 2세]] 등을 중심으로 [[모라비아]]인들은 다시 반란을 일으켰고 그해 [[동프랑크]] 군을 몰아냄으로써 모라비아의 영지를 잃게 되었다. [[873년]] 다시 [[모라비아]]와 전쟁을 하였으나 전쟁에 져서 [[874년]] 이후 [[대 모라비아]]는 독립했다.
 
그러나 모라비아는 [[라디슬라프]] 공의 지휘하에 분리독립을 기도했고, [[라디슬라프]]가 죽자 [[모라비아]]의 반란은 진압한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871년]] [[슬라보미르]], 라디슬라프의 조카 [[스바토풀크 2세]] 등을 중심으로 [[모라비아]]인들은 다시 반란을 일으켰고 그해 [[동프랑크]] 군을 몰아냄으로써 모라비아의 영지를 잃게 되었다. [[873년]] 다시 [[모라비아]]와 전쟁을 하였으나 전쟁에 져서 [[874년]] 이후 [[대 모라비아]]는 독립했다.
 
[[870년]]대 이후 다시 [[바이킹]]들이 영토를 침략, [[프리슬란트]], [[함부르크]], [[베를린]] 주변지역을 약탈하자 이를 물리쳤다. 그러나 [[바이킹]]의 침입과 [[마자르족]], [[슬라브족]]의 침략과 약탈은 계속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