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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는 창간 초기부터 식민지 조선사회의 인습에 얽매어 집안에 갇혀 있던 여성을 일깨우고자했다. 당시 동아일보는 '여성'면을 고정으로 두고 '신여성과 교육', '여성해방과 대가족제도', '여성과 직업' 등 여성의 권익 향상과 사회 참여를 독려하는 기획기사와 기고를 실었다.
 
또한 1933년 1월 일간 신문사로서는 최초로 여성 월간지 '[[신가정]]'('[[여성동아]]'의 전신)을 창간했다. '신가정'은 여성독자를 고려해 제목만 국한문을 섞어 쓰고, 그 외 모든 기사는 순 한글로 제작했다. 신가정은 여성지라는 특징을 살려 요리, 편물, 염색 등에 관한 각종 강습회를 열었다. 또한 부인 밤줍기 대회, 주부 야유회, 부인 고궁순례단 등 다양한 이벤트를 열어 집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던 주부들의 숨통을 열어 주었다.
 
동아일보는 계몽활동뿐만 아니라 각종 대회를 열어 여성들의 사회적인 참여를 유도하였다. 1923년 열린 최초의 [[전국여자정구대회]]는 여성의 권리신장과 기회균등을 주장하기 위해서 열린 대회였다. 지금도 전국여자정구대회라는 이름으로 이어지는 이 대회는 동아일보가 주최한 가장 오래된 사업이자 국내 스포츠를 통틀어 최장수 대회이기도 하다. 첫 대회가 열릴 당시는 유교적 전통이 굳어져 있었기에 이 대회는 단순한 스포츠의 차원을 넘어 여성의 지위 향상을 위한 사회적 캠페인이었다. 이 외에도 1925년 3월 조선최초로 여성들의 공개적인 등장의 발판을 마련한 ‘[[전조선여자웅변대회]]’가 열리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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