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원황후 (전한):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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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왕망의 대두 ===
[[기원전 1년]] 한 애제가 급사하고, [[전한 평제|한 평제]](漢平帝)가 즉위하면서, 왕정군은 이 기회를 타서 태황태후의 지위를 이용하여, 한 애제의 외척 및 측근 세력을 배제하여, 조카 왕망을 대사마에 임명하였고, 정치를 보좌를 명했다. 그러나, 왕망은 찬탈에 꿈을 강하게 먹고, 태황태후 왕정군에게 후원을 받는 이유로 조정의 권력 장악를장악을 도모하게 된다. 왕정군 자신은 왕망이 찬탈을 꿈구는 중에도 반대로 오히려 한나라 황실의 외척으로서 왕씨가 권력을 과하게 하지 않게 하였다. 왕망을 제후로 임명하려고 하는 움직임에 조용하게 반대를 하는 입장을 취하였다.
[[5년]] 조카 왕망과 대립한 결과, 한 평제가 독살되어 유영(劉嬰)을 황제로 옹립 되어 왕망이 주나라의 [[서주 성왕|성왕]](成王)과 [[주공 단]](周公旦)의 고사에 모방하여, 가황제(仮皇帝)를 자칭하자, 당시에 전국 옥새를 보관하고 있던 황태후 왕정군에게 전국옥새를 자신에게 인도하도록 요구했을 때, 왕정군은 격노하였고, 왕망의 사자인 [[왕순 (전한)|왕순]](王舜)을 잡고, 왕망에게 비난을 말하고, 왕정군은 옥새를 왕순을 향해서 내던지고 쓰러져 울었다고 한다. 덧붙여서, 이 때 떨어진 옥새는 일부가 훼손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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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딸 : 양아공주
 
{{틀:한나라의 황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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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기원전 71년 태어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