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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수정'''(廉洙政, [[1943년]] [[12월 5일]] ~ )은 [[대한민국]]의 [[로마 가톨릭교회]] [[추기경]]이다. 세례명은 '''안드레아'''이며, 제14대 [[천주교 서울대교구]]의 [[교구장]] 겸 [[천주교 평양교구|평양교구]]의 교구장 [[서리 (행정)|서리]]이다.
 
== 유년시절과 가계배경 ==
[[1943년]] [[경기도]] 안성군 삼죽면 미장리(현 [[경기도]] [[안성시]] 삼죽면 미장리)에서 아버지 염한진(갈리스도)과 어머니 백금월(수산나) 사이에서 5남 3녀 중 여섯째(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염수정 추기경 집안은 한국천주교회 초기 무렵 신앙을 받아드렸다.
 
염수정 추기경의 집안과 천주교회의 인연은 염수정 추기경의 5대조 할아버지인 파주(坡州) 염씨 15세손 의암공 염덕순(요셉)공 때부터다.4대조 할아버지인 염석태(베드로) 할아버지는 1850년 5월 진천 감영에서 순교했고 그의 부인인 김 마리아 할머니도 1850년 9월30일 경기도 죽산성지에서 참수형을 받고 순교했다.3대조부터 배티 옹기마을에서 경기도 안성 삼죽면 일대로 옮겨 오면서 이 곳에 정착하게 된 염 추기경의 일가는 염 추기경의 형제 까지 6대째 천주교 신앙을 이어오고 있다.
[[1943년]] [[경기도]] 안성군 삼죽면 미장리(현 [[경기도]] [[안성시]] 삼죽면 미장리)에서 아버지 염한진(갈리스도)과 어머니 백금월(수산나) 사이에서 5남 3녀 중 여섯째(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염수정 추기경 집안은 한국천주교회 초기 무렵 신앙을 받아드렸다.
 
염수정 추기경의 할머니 박 막달레나 여사와 어머니 백금월여사는 자식 중 성직자가 탄생할 수 있도록 매월 안성본당에서 미리내, 감곡 성당으로 순례하며 첫 첨례를 지키며 살았다. 어머니 백금월 여사는 염수정 추기경을 임신한 순간부터 `아들이면 사제가, 딸이면 수녀가 되도록 성모님께 바치겠다`고 남몰래 기도해왔다.염수정 추기경은 삼죽면 미장리 삼죽초등학교를 다니며 어린 시절을 보내다 초등학교 2학년 때 집안이 서울로 이사했다. 이후 동성중학교,성신고등학교(소신학교),가톨릭 대학교를 입학하였다. 염수정 추기경이 사제가 되기로 결심한 것은 서울 동성중학교 재학 시절 고등학교 입학시험을 준비하다 가톨릭계의 한 잡지에서 소신학교(성신고등학교) 입학 하였다.안내문을 발견한 것이 계기가 됐다.
염수정 추기경의 집안과 천주교회의 인연은 염수정 추기경의 5대조 할아버지인 파주(坡州) 염씨 15세손 의암공 염덕순(요셉)공 때부터다.4대조 할아버지인 염석태(베드로) 할아버지는 1850년 5월 진천 감영에서 순교했고 그의 부인인 김 마리아 할머니도 1850년 9월30일 경기도 죽산성지에서 참수형을 받고 순교했다.3대조부터 배티 옹기마을에서 경기도 안성 삼죽면 일대로 옮겨 오면서 이 곳에 정착하게 된 염 추기경의 일가는 염 추기경의 형제 까지 6대째 천주교 신앙을 이어오고 있다.
 
염수정 추기경의 할머니 박 막달레나 여사와 어머니 백금월여사는 자식 중 성직자가 탄생할 수 있도록 매월 안성본당에서 미리내, 감곡 성당으로 순례하며 첫 첨례를 지키며 살았다.
어머니 백금월 여사는 염수정 추기경을 임신한 순간부터 `아들이면 사제가, 딸이면 수녀가 되도록 성모님께 바치겠다`고 남몰래 기도해왔다.염수정 추기경은 삼죽면 미장리 삼죽초등학교를 다니며 어린 시절을 보내다 초등학교 2학년 때 집안이 서울로 이사했다. 이후 동성중학교,성신고등학교(소신학교),가톨릭 대학교를 입학 하였다.
염수정 추기경이 사제가 되기로 결심한 것은 서울 동성중학교 재학 시절 고등학교 입학시험을 준비하다 가톨릭계의 한 잡지에서 소신학교(성신고등학교) 입학 안내문을 발견한 것이 계기가 됐다.
 
== 사제와 주교 ==
 
1970년 7월 5일 부제서품을 받았고 1970년 12월 8일 사제서품을 받았다. 이태원·장위동·영등포동본당 주임, 가톨릭대학교 성신교정 사무처장, 서울대교구 사무처장 등을 역임하고 2002년 1월 25일 서울대교구 [[보좌주교]]로 임명되었으며 티뷰카의 명의주교로 서품되었다. 이후 교구 총대리, 중서울지역 담당 교구장대리,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생명위원회 위원장 등을 맡아왔으며 (재)바보의나눔과 옹기장학회 등 이사장으로도 활동해 왔다.<ref>{{뉴스 인용|제목=신임 서울대교구장에 염수정 대주교|url=http://www.catholictimes.org/view.aspx?AID=244180|출판사=가톨릭신문|저자=이주연 기자|작성일자=2012-05-20|확인일자=2012-05-20}}</ref>
 
2012년 5월 10일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정진석]] 추기경의 서울 대교구의 교구장직 사임 요청을 수락하고, 그 후임으로 서울대교구 총대리인 염수정 주교를 임명하였다. 염수정 주교는 대교구의 교구장 임명과 더불어 자동으로 대주교로 승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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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 대주교의 서울대교구 주교좌 착좌식은 2012년 6월 25일 [[명동대성당]]에서 열렸다. 이어서 2012년 6월 29일 바티칸 [[성 베드로 대성전]]에서 교황 베네딕토 16세로부터 직접 [[팔리움]]을 받았다.
 
== 박홍 총장 고해성사 누설 조사 면죄부 ==
1994년 [[예수회]]소속 [[박홍]] 전 서강대 총장이 이른바 '주사파 발언 사태' 로 엄청난 사회적 파장이 일자 운동권 인사들은 박홍 총장에게 근거를 대라며 추궁했다. 이에 대해 박홍 총장은 "주사파 관련 내용을 고해성사 때 들은 내용"이라고 답했다.
 
이에 천주교 정의구현전국연합 김동주 공동의장 등 신도 6명이 박홍 신부를 '고해성사 비밀 누설 혐의'로 서울대교구에 고발했다. 당시 서울대교구 사무처장이었던 염수정 추기경은 사건 조사를 담당했고 박홍 총장에 대해 무혐의 처리했다.<ref>[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4083100289119004&editNo=5&printCount=1&publishDate=1994-08-31&officeId=00028&pageNo=19&printNo=1997&publishType=00010|<한겨레신문>1994년 8월31일자 19면]</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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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장 ==
주교의 사도적 권위를 상징하는 모자 아래 5단의 술은 추기경을 상징하며, 십자가는 한국 순교자들의 십자가(칼과 차꼬)로 생명과 부활을 상징한다.
 
주교의 사도적 권위를 상징하는 모자 아래 5단의 술은 추기경을 상징하며, 십자가는 한국 순교자들의 십자가(칼과 차꼬)로 생명과 부활을 상징한다.
 
방패 좌편 무지개는 하느님의 구원을 상징하며, 사랑(보라)과 희망(청색)과 믿음(녹색)을 의미한다. 평화의 상징 비둘기는 새 생명의 전령사로서 과거에 오셨고, 미래에 재림할 그리스도의 성령으로 오늘 이 시각에도 사람들 가운데에 임재하는 성령을 상징한다.
 
가운데 큰 별은 [[대한민국]] 보호하는 [[성모 마리아]]와 종말에 구원의 완성을 이룰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고 푸른 하늘 빛 바탕 위에 두 개의 작은 별은 그리스도의 보호로 평화 통일을 이루어야 할 남한([[대한민국]])과 북한([[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상징한다. 방패의 붉은 바탕은 정의를, 노랑은 평화를 청색은 희생과 나눔을 의미하고 그 가운데 손을 잡은 듯 이어가는 문양은 사랑의 연대를 의미한다.
 
우리의 구원과 미래 젊은이들의 꿈과 비전은 정의와 평화, 희생과 나눔의 깊은 연대 속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을 표상하며, 닻 십자가와 알파 오메가는 이 모든 희망과 염원이 궁극적으로 영원하신 하느님의 계획안에서 이루어지게 되리라는 신앙고백을 아로 새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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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깥 고리 ==
*[ {{공식 웹사이트|http://ysj.catholic.or.kr/default.asp 염수정 안드레아 추기경 홈페이지]}}
 
{{전임후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