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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광종|광종]]이 강력히 추진하였던 [[호족]] 세력 숙청의 폭풍 속에서 부왕 [[고려 광종|광종]]과의 관계마저 좋지 못해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내었다.
 
[[975년]] [[광종]]의 뒤를 이어 고려 제5대 왕제로왕(皇)으로 즉위하였다. 재위 초기에는 [[975년]]부터 [[976년]]까지 1년간 [[호족]] 출신 [[정치가]] 왕선(王詵)이 [[대리청정]]을 맡았다. 그러나 왕선이 권력을 남용하고 횡포를 자행하자 왕선의 대리청정 실권을 박탈시키고 축출하였다. 재위기 초반에는 [[광종]] 당시 수감되었던 정치범을 석방하고 억울함을 호소하는 자들의 죄를 씻어주었으면서도 [[고려 광종|광종]]의 치적을 부정하는 주장에는 단호하게 대응하였다. 또한 [[보복법]]이라는 것을 제정하여 모함을 당한 사람들이 무고자를 찾아 고발하거나 처벌하는 제도를 신설하였는데, 이 과정에서 [[고려 태조|태조]]의 서자이자 유력 왕위 계승자였던 [[효성태자]]와 [[원녕태자]]가 살해당하는 사태가 발생하였다. 이후 [[왕주|경종]]은 보복법을 취소하였다.
 
[[고려 광종|광종]] 생존 당시 [[고려 광종|광종]]의 명으로 [[신라 경순왕]]의 딸 헌승왕후헌승황후(憲承后), [[헌숙왕후]](獻肅王后) 김씨와 결혼하였다. 즉위 후인 975년, 장인인 [[신라 경순왕]]을 상보로 책봉하면서 작위를 정승공(政丞公)에서 낙랑왕(樂浪王)으로 높이고 식읍을 하사하였다. 이어 [[고려 광종|광종]]의 명에 의해 [[헌애왕후|헌애왕후 황보씨]](獻哀王太后), [[헌정왕후|헌정왕후 황보씨]](獻貞王太后) 자매와 결혼하였고 헌애왕후로부터는 아들 [[고려 목종|목종]]을 얻었다.
나중에는 정사를 멀리 하고 오락과 음탕한 생활에 빠져 지냈다. [[981년]] [[7월]] 병세가 위독해지자 장남인 개령군 왕송(王訟, [[고려 목종|목종]])에게 양위하려 했으나 어린 아들을 세우면 왕위가 찬탈당할 것을 우려하여 사촌동생이며 매제이자 처남인 개령군 왕치(王治, [[고려 성종|성종]])에게 [[선위|양위]]하였으며 같은 해 [[8월]]에 병사하였다. 능은 [[경기도]] [[개풍군]]에 위치한 영릉(榮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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