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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황제에 즉위했을 때, 당시 제국의 상황은 최악으로 달리고 있었다. [[아바르족]]과 [[슬라브족]]은 각각 [[트라키아]]와 [[발칸 반도]]를 유린하고 있었고 이란은 [[보스포루스 해협]]의 맞은편인 [[칼케돈]]까지 진출하였다. 비록 수도 콘스탄티누폴리스는 난공불락의 요소였기에 안전했지만 제국의 변방은 속절없이 무너지고 있었다.
 
[[호스로우호스로 2세]]의 사산조 페르시아는 [[611년]] [[안티오키아]]를 점령했고 [[613년]] [[다마스쿠스]], [[614년]] [[예루살렘]], [[616년]]에는 [[이집트]]를 손에 넣었다. 특히 예루살렘의 함락은 페르시아에 협력한 유대인에 의해 대대적인 [[그리스도인]]의 학살과 약탈이 벌어졌고, 이때 [[그리스도]]의 [[성십자가]]를 페르시아에 빼앗김으로 인해 제국민들에게 충격을 주었다.
 
[[618년]] 헤라클리우스는 제국의 수도를 [[카르타고]]로 옮기는 극단적인 조치를 취하여 제국을 쇄신하려고 하였으나 [[콘스탄티노폴리스 총대주교|콘스탄티누폴리스 총대주교]]와 콘스탄티누폴리스 시민들의 격렬한 반대로 뜻을 이루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