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기독교: 두 판 사이의 차이

내용 삭제됨 내용 추가됨
Deleywale (토론 | 기여)
편집 요약 없음
122번째 줄:
[[로마 가톨릭]]의 자생적 발생을 시작으로 [[한반도]]에서 뿌리내리기 시작한 [[기독교]]는 한국사회에서 [[양반]]과 [[민중]]이, 남성과 여성이 같이 [[삼위일체]] 하나님을 [[예배]]하는 [[평등]]의 실천, [[찬송가]]와 [[성서]]의 [[한글]]번역을 통한 한글 교육의 보급, [[학교]] 설립등의 교육발전, [[의료]] 사업등의 많은 공헌을 하였다.
 
=== 한국 기독교의 사회적 공헌 ===
한국의 기독교인들은 학문적으로 [[민중신학]], [[해방신학]]처럼 기독교 신학을 사회적으로 해석하려는 진보적인 신학들을 한국 상황에 맞게 해석하여 군사독재정권에 저항하는 민주화 운동을 실천하였다.<ref>《믿음 그리고 행함》/김영재 지음/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ref> 또한 종교다원신학을 주장함으로써 종교간의 대화 곧 다른 종교를 개종과 정복의 대상이 아닌 기독교와의 공통점을 찾아 대화하려는 노력을 실천했으며, [[기독교]]교파에 따른 전통들의 다양성을 [[예수]]는 [[그리스도]]라는 기독교의 공동신조에 근거하여 존중하고 일치하려는 [[에큐메니컬 운동]]<ref>《이야기 교회사》/이성덕 지음/살림</ref>으로 교회분열로 인한 상처를 치유하고자 하였다. 또한 개발독재시기에는 자본가들의 [[착취]]와 [[노동운동]] 탄압 곧 [[노동자]]들의 권리가 [[자본가]]에 의해 짓밞혀지는 불의한 현실로 고통받는 노동자들의 편에 서서 [[기독교인]]의 사회적 책임을 실천하려는 산업선교가 실천되기도 하였다. 저명한 개신교 신학자 장공 [[김재준]] 목사가 [[개신교]]와 로마 가톨릭에서 [[노동자]]는 [[기계]]가 아니라고 외치며 스스로 분신한 [[전태일]] 열사를 추모하는 [[예배]]를 집전하자, "이 자리는 전태일의 죽음을 추모하는 자리가 아닌, 기독교인들의 나태를 추모하는 자리이다."라고 설교한 일<ref>《전태일 평전》/조영래 지음/아름다운 청년 전태일 刊</ref>, 도시산업선교회가 들어오면 도산한다는 자본가들의 비방과 형사를 보내 감시하는 경찰의 탄압에도 불구하고 진보적인 기독교인들에 의해 도시산업선교회를 결성하여 활동한 일이 그 흔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