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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투 후, 군대에서 아시가루의 역할은 사무라이에게 강력한 보완책으로 통합되었다. 이러한 이점은 1592년과 1597년, 조선인들과 나중엔 [[중국인]]들에게 맞선 두 번의 [[조선]] 침략에서 활용되었다. 비록 첫번째 침략에서 총기(화승총)과 활의 비율은 2대1 이었지만 두번째 침략에서는 총기가 매우 효과적이었던 이유로 그 비율이 4대1이 되었다.
== 징병의 중단 ==
[[도쿠가와 막부]]의 출현에 따라 아시가루의 징집은 명칭만 남게 되었다. 직업군에 대한 아시가루의 변화는 [[오다 노부나가]] 이후로 진전되었기에 점진적으로 아시가루는 농민으로부터 분리되었다. [[에도 시대]]에 접어들면서 일본에서는 아시가루의 지위가 고정되었고 200년 이상 징병 시행이 폐지됐다. 아시가루는 몇 몇 번(영지)에서는 사무라이 계급으로 여겨졌지만, 다른 곳에서는 그렇지 않았다.
 
{{토막글|일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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