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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기 ===
하이델베르크에 있는 성이 처음으로 언급되었던 때는 1214년으로, 루드비히 1세가 호헨슈타펜 황제인 프레드리히 2세에게 받았을 때이다.<ref>{{서적 인용|저자=Harry B. Davis|제목=What Happened in Heidelberg: From Heidelberg Man to the Present|출판사=Verlag Brausdruck GmbH|발행년도=1977|isbn=0007C650K}}</ref> 그 뒤로 몇몇 문서에 해당 성에 대한 내용으로 추정되는 부분이 있었는데, 대부분 사실인지 미심쩍고 또 충분한 정보를 포함하고 있지 않았다. 1615년에 메리안의 Topographia Palatinatus Rheni에서 왕자 루드비히 5세를 '새로운 성 한 채를 100년 넘게 짓고 있다'라고 표현했다. 18세기까지 대부분의 성에 대한 묘사는 메리안의 정보에서 나온 것들이었다.
 
[[파일:Ruine des Waffenturms beim Heidelberger Schloss bei Nacht 001.JPG|섬네일|파괴된 성벽]]
 
=== 전쟁과 재해로 인한 훼손 ===
1618년부터 1648년까지, 독일에서는 [[개신교]](프로테스탄트)와 [[로마 가톨릭교회]] 간에 종교 전쟁이 발발했다. 이것이 바로 [[30년 전쟁]]이고 이 전쟁 기간 동안 하이델베르크 성은 양 진영으로부터 공격을 받고 점령당하는 등 심각한 피해를 입게 되었다.
 
30년 전쟁이 끝난 이후 재건축 작업에 착수했으나 1689년과 1693년 프랑스와의 전쟁으로 제대로 된 복원 작업이 이루어질 수가 없었다. 그리하여 성은 더욱 더 황폐해졌다. 그 이후에도 성을 복원하기 위한 노력이 있었으나 1764년 번개로 인해 화재가 발생하여 성의 일부가 또다시 훼손되었다. 그러자 그 이후 지역 주민들은 폐허가 된 성에서 필요한 돌이나 자재들을 날라갔다.
 
이러한 하이델베르크 성의 훼손에 대해 작가 [[빅토르 위고]]는 ''"이 성은 유럽을 뒤흔든 모든 사건의 피해자가 되어 왔으며, 지금은 그 무게로 무너져 내렸다."''고 말하기도 했다.<ref>{{서적 인용|isbn=9788960531635|제목=죽기 전에 꼭 봐야 할 세계 역사 유적 1001|저자=리처드 카벤디쉬, 코이치로 마츠무라|출판사=마로니에북스}}</ref>
 
=== 성의 복구 계획 ===
하이델베르크 성의 지하에는 세계에서 가장 큰 크기의 포도주 술통이 있다. 이 술통은 1751년 선제 후 카를테오도어 때 제작되었다. 술통의 높이는 약 7미터이며 폭은 약 8.5미터에 이른다. 약 221,726리터(58,124 gallons)만큼의 술을 보관할 수 있다.
 
거대한 술통의 맞은 편에는 페르케오의 목상이 서 있다. 페르케오는 하루에 18리터의 포도주를 15년 동안이나 마신 대주가로 항상 술에 취해 있었다. 그는 80세까지 장수하였으나 의사가 건강을 위해 술을 끊어야 한다고 하자 바로 그 다음날 세상을 떠났다.<ref>{{서적 인용|isbn=9788952745118|제목=유럽 음악도시 기행|저자=황영관|출판사=시공사}}</ref>
 
=== 독일 약제상 박물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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